안세영의 중국 바로 읽기
(6) 정화, 실크로드, 그리고 일대일로
15세기 초 명나라 정화 제독이 대항해 당시 사용한 배(위)와 콜럼버스가 신대륙 탐험에 나설 때 이용한 캐러벨선의 크기를 비교할 수 있게 만든 모형.  두바이 이븐 바투타몰 전시품

15세기 초 명나라 정화 제독이 대항해 당시 사용한 배(위)와 콜럼버스가 신대륙 탐험에 나설 때 이용한 캐러벨선의 크기를 비교할 수 있게 만든 모형. 두바이 이븐 바투타몰 전시품

역사적으로 중국은 해양대국이 될 기회가 딱 한 번 있었다. 15세기 초 명나라 정화 제독의 대항해 때다. 1405년부터 1433년까지 30년 가까이 인도, 아라비아반도를 거쳐 동아프리카 말린디(현 케냐)까지 일곱 차례 항해했다. (L Levathes, , 1994년) 아프리카 기린을 베이징으로 가져올 때는 신화에 나오는 ‘신성한 동물’이 나타났다고 해 천자가 맞이할 정도였다. 4차 항해 때 자금성을 방문한 말린디의 통상사절단을 다음 항해 때 귀국시킬 정도로 명나라는 동남아시아, 인도양은 물론 아라비아반도와 동아프리카까지 조공무역체계를 구축했다.

항해의 규모도 인도 항로를 발견한 바스코 다가마,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다가마와 콜럼버스가 서너 척의 캐러벨(caravel)선으로 바다로 나갔는데 보물선단(treasure fleet)으로 불린 정화함대는 1차 항해(1405~1407년) 때 무려 317여 척의 정크선에 2만7000명을 태우고 항해했다. <사진>에서 보듯이 정크선은 800t 규모로 50~100t급인 캐러벨선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놀랍게도 당시 유럽 배에는 없던, 배 바닥에 구멍이 뚫려도 침몰하지 않는 격실을 갖추고 있었다. 나침반을 처음 발명한 중국인답게 15세기 초 당시로는 세계 최고의 항해술과 최대 규모 선단으로 태평양과 인도양까지 아우르는 대항해를 한 것이다.

이에 비해 15세기 초 유럽의 항해는 베네치아 상인들이 지중해를 돌아다니는 정도였다. 그나마 대양으로 나가려는 포르투갈의 선박도 지금의 사하라사막 서쪽 보자도르곶을 넘지 못했다. 험한 조류와 암초 때문에 유럽 선원들이 세상의 끝 ‘마(魔)의 바다’라고 두려워한 보자도르곶을 넘고자 포르투갈의 항해왕 헨리가 1423년부터 1433년까지 15차례나 탐험선을 보냈지만 모두 빈손으로 돌아왔다. (다니엘 부어스틴, <발견자들>, 1985년) 그런데 놀랍게도 1433년 7차 항해를 마지막으로 명나라는 해금(海禁)정책을 펼친다. 모든 대형 선박을 파괴하고 대항해시대 유럽인들이 생명처럼 아끼던 항해일지까지 없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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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없는 과오의 배경

어느 나라를 보건 대외정책의 큰 과오는 국내 정치세력 사이의 암투에서 비롯된다. 무슬림이기도 했던 정화는 영락제의 총애를 받은 환관이었다. 중국 역사를 볼 때 항상 환관과 유교 관료 간 갈등이 문제였다. 정화의 빈번한 항해가 국가재정을 탕진한다고 유교 관료세력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쿠데타로 조카 건문제를 몰아낸 영락제의 가장 큰 근심은 “건문제가 바다로 도망가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풍문이었다. 그래서 유교 관료세력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계속 정화를 밀어줬다. 영락제 사후 북방 민족이 강성해지자 1434년 중국은 스스로 ‘바다로 나아가는 길’을 봉쇄해 버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로 그해 1434년에 포르투갈 함대가 보자도르곶을 넘고 서부 아프리카로 내려갔다. 항해·조선술을 계속 발전시켜 15세기 후반 맞바람을 받으며 원양 항해를 할 수 있는 획기적인 캐러벨선을 개발해 희망봉을 넘어 1498년 다가마가 인도 항로를 발견했다.

서구 제국주의에 짓밟히는 서글픈 아시아 식민시대의 역사는 여기서 시작된다. 인도양에 들어선 포르투갈의 다가마 함대가 처음 한 일은 1502년 메카 순례를 마치고 귀향하던 무슬림 선박을 무자비하게 약탈한 것이었다. 당시 인도양의 제해권을 장악한 무슬림 함대를 격파하고 향료 집산지인 인도 캘리컷을 시작으로 말라카까지 거침없이 식민지로 편입했다. 역사의 가정이지만 만약 명나라가 해금정책을 쓰지 않고 계속 해양대국으로 남아있었다면 근세 동서양의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인도양을 지배하던 중국 함대가 유럽 식민 해양세력의 동양 진출을 동아프리카에서 막았을 것이다. 그러면 마다가스카르나 말린디가 서양과 동양의 해양 세력이 만나는 경계가 됐을지도 모른다.

실크로드의 고선지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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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는 한나라 때 장건이 개척했지만 역사상 중국 군대가 제일 서쪽으로 간 곳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다. 8세기 고구려 유민인 고선지 장군이 당나라 군대를 이끌고 갔다. 당나라는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지배계층 3만8200가구, 약 20만 명을 지금의 간쑤성 일대와 윈난성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지배선, <고선지 평전>, 2002년)

관노인 고구려 유민이 신분을 끌어올리는 유일한 길은 군인이 되는 것이었다. 아버지 고사계 장군의 뒤를 이어 고선지 장군도 서역 정벌에 나서 혁혁한 전과를 세운다. 747년 파미르고원을 넘어 서역의 종주국 토번(현 티베트)을 정벌하고 750년에는 석국(타슈켄트)까지 복속시켰다. 실크로드의 수많은 왕국을 당나라 조공체계에 편입한 것이다.

이때 빠르게 영역을 넓혀가던 사라센 세력은 예루살렘,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실크로드를 따라 동진하다가 751년 7월 서진하던 고선지 장군과 지금의 사마르칸트 근처 탈라스에서 마주친다. 대격전은 사라센의 승리로 끝나 약 2만 명의 당나라 군인이 포로로 잡힌다. 이 포로 중에 제지공이 있어 794년 압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에 제지공장이 세워지고 수백 년이 흘러 유럽까지 제지술이 전파된다. 이 제지술이 1456년 구텐베르크의 인쇄술과 결합해 이때까지 양피지에 쓰여 소수 특권계층이 독점하던 성경이 일반 대중에게도 보급된다. 만약 탈라스 전투에서 고선지 장군이 승리했다면 중앙아시아가 당제국에 편입되고 제지술의 유럽 전파도 몇백 년 늦어졌을 것이다.

중국의 일대일로(One Belt-One Road)

당제국과 몽고제국 때 가장 번창했던 실크로드는 유럽의 동방항로 개척으로 그간 거의 잊힌 역사의 유물이 됐다. 2013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과거 찬란하던 정화 제독의 해상 실크로드와 고선지 장군의 육상 실크로드의 꿈을 재현하기 위한 일대일로 정책을 발표하면서 다시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이 주도해 인도 독일 등 77개국이 가입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창설하고 친성혜용(親誠惠容)이란 거창한 슬로건을 내세웠다. “일대일로는 개방과 협력의 산물이며 상호호혜와 투명성 원칙에 바탕을 두고 주변국과 공동으로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600여 년 전 정화함대가 베푼 너그러운 조공무역체계를 떠오르게 하는 그럴듯한 구호다. 비단, 도자기를 주고 진주, 아라비아 말 등과 맞바꿨지만 명나라의 위대함을 과시하는 조공무역은 보통 상대가 바치는 조공의 1.5~2배로 후하게 하사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같은 ‘차이나’면서도 명나라와 중화인민공화국은 좀 다른 것 같다. 그간 일대일로 건설 붐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저가 공세를 하는 중국 업체의 ‘독식’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국가별 수주 통계 자체가 오리무중이다. 한국은 미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2의 중동붐’을 노리고 AIIB 창립회원으로 가입했는데 너무 순진한 기대를 한 것 같다.

또 라오스 비엔티안~중국 국경 간 414㎞의 철도 공사에 중국인 노동자를 데려다 썼듯이, 중국은 많은 해외 공사에 자국민을 동원한다. 이는 중국이 아프리카에 건설 지원을 하며 써먹던 수법이다. 공사가 끝난 뒤 상당수를 눌러 앉혀 현지 상권을 장악하도록 한다. 사실 AIIB의 상당수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이 경제성 때문에 참여하기를 꺼린 것이다. 개발도상국이야 당장 중국이 돈을 빌려준다니까 항구, 철도를 건설하지만 경제성이 없으면 빚을 갚지 못하고 고스란히 국가채무가 된다. 이미 라오스 파키스탄 등 23개국이 부채 함정에 빠졌다는 보고서가 나오고 있다. (미국 글로벌개발센터,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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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스리랑카와 같이 주권(主權)자산과 다름없는 항만 운영권을 중국에 넘겨주는 나라가 나오고 있다. 당연히 중국이 장악한 항만은 중국 해군의 해외기지화하고 있다. 2017년 동아프리카의 지부티항을 시작으로 캄보디아 림항 등도 비슷한 처지로 전락하고 있다. 해상과 육상 물류네트워크 구축이라는 순수한 간판을 내걸고 출발한 일대일로가 시간이 갈수록 ‘중국몽’ 실현을 위한 지역 패권전략으로 변질되고, 이는 당연히 미국의 ‘인도·태평양 구상’과 충돌하고 있다.

안세영 < 성균관대 특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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