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한 사장 영장 기각
수사 장기화 등 '후폭풍'

'과잉' 논란 부른 별건수사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이 지난 20일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이 지난 20일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개월 동안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를 두고 “사건의 ‘본류’인 분식회계는 밝히지 못한 채 ‘별건’인 증거인멸 혐의로만 변죽을 올린 수사”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해 처음으로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하면서다.

오는 25일 윤석열 차기 검찰총장 취임 이후 검사 인사이동으로 인한 수사팀 교체 시기까지 맞물려 삼성바이오 수사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별건 수사로만 허송세월한 8개월

지난 19일 명재권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자본시장법 위반 등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태한 삼성바이오 사장 등 세 명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열고 20일 새벽 기각을 결정했다. 명 부장판사는 “주요 범죄 성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의혹에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를 따지는 법원의 사실상 첫 판단이었다.

법조계에선 별건 수사로만 허송세월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은 지난 2월 삼성바이오 수사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2부 인력을 12명에서 18명으로 늘렸다. 하지만 수사의 화력은 별건인 증거인멸 혐의에 집중했다. 지금까지 증거인멸에 관여한 의혹으로만 삼성 임직원 여덟 명이 구속됐다. 이 과정에서 압수수색을 여섯 차례 하고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등 숱한 ‘과잉수사’ 논란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분식회계 유죄 입증의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김 사장 신병 확보에는 실패했다.

분식회계 규명을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에서 구속 사유로 주거불명 및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 등을 규정하고 있는 만큼 ‘증거인멸은 비교적 구속영장 발부가 잘 되는 혐의’”라며 “증거인멸로 일단 주요 인사 신병을 확보하고 분식회계를 추궁하는 것이 검찰의 전략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별건수사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여덟 명의 신병을 확보했음에도 분식회계와 관련해 유의미한 내용을 캐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번 김 사장 구속영장 청구 때도 횡령 혐의를 포함해 또다시 별건 논란이 일었다. 그만큼 검찰이 분식회계에 자신이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삼성 측은 일관되게 분식회계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삼바 분식회계' 못 밝히고 8개월간 '별건털이'…변죽만 울린 檢수사

새 수사팀 꾸려지면 수사 장기화될 듯

검찰 수사는 잠시 숨고르기를 한 뒤 다음달께 새로운 수사팀이 꾸려지면 재개될 전망이다. 애초 문무일 검찰총장 임기 종료일(24일) 전에 삼성바이오 수사가 마무리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장기화가 불가피해졌다.

향후 검찰 수사는 분식회계 혐의 규명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김 사장 구속영장 기각 직후 “이해하기 어렵다”며 “추가 수사 후 구속영장 재청구 등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최근 조사에서 삼성 측 요구에 따라 감사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진술한 회계사들에 대해서도 조만간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검찰은 김 사장 구속을 바탕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소환한다는 방침이었으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해 삼성에 우호적인 여론이 나오고 있는 것도 검찰 입장에선 부담이다. 삼성전자가 대표적인 피해 기업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 부회장의 역할이 크기 때문에 검찰도 정무적 판단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이번엔 증거인멸이 아니라 횡령 혐의로 또다시 별건 수사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사장은 2016년 삼성바이오 주식을 개인적으로 사들이는 과정에서 회삿돈 30여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과정을 당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알고도 묵인했다고 의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사장의 횡령 혐의를 발판 삼아 미래전략실 등 윗선으로 수사 전선이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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