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국민안전교육연구단지로 이전…국제수준 실물화재훈련장 갖춰

"FIRST IN, LAST OUT" (가장 먼저 들어가고 가장 나중에 나온다)
지난 11일 찾아간 충남 공주 사곡면 국민안전교육연구단지 내 중앙소방학교. 첩첩이 놓인 산자락 사이에 자리한 교정 안으로 들어서자 15층 높이 '복합고층건축물 화재진압 훈련장' 건물과 외벽에 적힌 영어 문구가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았다.

화재 등 위험한 재난 현장에 제일 먼저 들어가고 맨 마지막에 철수한다는 소방관들의 사명을 상징하는 문구다.

중앙소방학교에서 이뤄지는 교육도 결국 이 한마디로 압축된다.

소방간부후보생 등 신임 소방관들이 이곳에서 실전훈련을 받으며 '가장 먼저 들어가 마지막에 나오는' 소방관으로 거듭난다.

눈앞 천장에 불꽃이 활활…실전 같은 중앙소방학교 훈련현장
중앙소방학교는 전국에 있는 9개 소방학교 중 하나로 신임 소방간부후보생과 소방정·소방령 등 관리자급에 대한 지휘역량 훈련을 주로 진행하는 곳이다.

1978년 경기도 수원에 개교해 1986년 12월 천안으로 옮겨 33년을 머무르다 공주 국민안전교육연구단지에 새로 건물을 지어 지난 1일부로 이전했다.

새로 조성된 중앙소방학교는 42만㎡ 부지에 연면적 6만8천여㎡의 건물 39개동으로 조성됐다.

연면적으로는 천안 시절의 두 배 이상이다.

규모뿐만 아니라 교육환경도 국제 수준에 맞게 업그레이드했다.

고층 건물 화재, 붕괴사고, 수난사고, 여러 재난 유형별 훈련장을 마련해 실제에 최대한 가까운 상황을 경험하며 대응능력을 키울 수 있다.

기자들에게도 일부 교육 훈련시설들을 체험할 기회가 주어졌다.

훈련에 앞서 안전장비들을 착용했다.

방화복과 공기호흡기, 헬멧까지 20㎏이 넘는 장비를 착용하고 나니 서서 숨만 쉬고 있는데도 등에 땀이 줄줄 흘렀다.

전날 내린 비로 무더위가 한풀 가신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도끼 등 다른 필요 장비까지 합치면 소방관들이 출동할 때 기본으로 지고 가는 무게가 30㎏에 이른다는데, 그보다 10㎏ 이상 덜 짊어지고도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방화복을 입고서 '농연훈련장'으로 향했다.

어둠 속에서 각종 장애물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 화재 현장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이다.

훈련은 4인1조로 이뤄졌다.

짙은 연기가 가득 찬 미로 같은 통로 안을 기어서 통과하는 방식이다.

연기만으로도 앞이 잘 안 보이는데 좁은 통로 안으로 기어들어 가는 순간 조명이 일제히 꺼지며 사방이 어둠에 잠겼다.

교관들이 손전등 불빛을 잠깐씩 비춰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손으로 더듬어가며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

칠흑 같은 어둠과 마스크 안을 채우는 거친 숨소리, 앞뒤 동료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뒤섞이자 훈련상황임에도 본능적으로 공포심이 일었다.

공기호흡기가 중간에 새는 바람에 훈련을 다 마치지 못하고 나오게 된 것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눈앞 천장에 불꽃이 활활…실전 같은 중앙소방학교 훈련현장
다음 훈련은 복합고층건축물 화재 진압 훈련장에서 이뤄졌다.

지하 1층·지상 15층 규모로 지하에는 노래방을, 지상에는 상가와 대형할인마트·고시원·숙박시설·병원·아파트 등 다양한 시설물 모형을 만들어 놓고 실제 불길을 일으켜 진압훈련을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숙박시설을 재현한 5층으로 올라가 '플래시오버' 현상을 경험해보고 물을 직접 뿌려보실 겁니다.

"
기자들의 훈련 교관을 맡은 서준석 소방경의 말에 '말도 안 돼' 소리와 함께 헛웃음이 나왔다.

플래시오버는 가연성 가스가 천장 부근에 모였다가 한 번에 인화하면서 폭발적으로 불꽃이 도는 현상이다.

그나마 불이 난 방 안까지는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지만 막상 문이 열리고 불과 몇m 앞 천장에 불길이 치솟은 모습을 보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동료들과 소방호스를 들고 레버를 당겨 물을 뿌려봤지만 호스 무게가 만만치 않아 생각보다 조준이 쉽지 않았다.

실제로도 소방수를 뿌릴 때는 2∼4인이 한조가 돼 움직인다고 한다.

이런 실물화재훈련장은 국제적으로도 최고 수준에 해당한다고 중앙소방학교 측은 설명했다.

이전까지 국내에 실물화재 훈련이 가능한 시설은 경기소방학교에만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중앙소방학교에서 플래시오버나 백드래프트(공기가 차단됐던 화재현장 실내에 갑자기 다량의 산소가 공급되며 폭발적으로 발화하는 현상) 등 화재 시 발생하는 여러 위험 상황을 재현하고 실전훈련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눈앞 천장에 불꽃이 활활…실전 같은 중앙소방학교 훈련현장
이밖에 지하 공동구 화재 현장을 경험하는 공동구 화재진압 훈련장, 다양한 유해화학물질 사고 발생에 대처하는 화학물질사고대응 훈련장, 화재 상황을 가정해 통합지휘·관리 훈련을 하는 가상현실(VR) 기반 시뮬레이션 훈련장, 건물 붕괴·매몰사고 현장을 재현한 도시탐색구조·붕괴사고대응 훈련장 등도 새로 마련됐다.

최태영 중앙소방학교장은 "천안 시절 중앙소방학교는 1980년대 상황에 따라 만들어지다 보니 단순히 기술이나 체력을 훈련하는 시설에 그쳤다"며 "하지만 공주로 이전하면서 복잡하고 다양해진 재난 현장에 맞춰 첨단훈련시설을 갖추고 실제와 가장 가까운 상황을 연출해 경험해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중앙소방학교의 훈련시설은 내년부터 민간에도 확대 개방될 예정이다.

지금도 학교 등 일부 기관·단체의 신청을 받아 교육을 진행하고 있지만, 내년부터는 다중이용업 소방안전관리자와 의용소방대원, 석유화학단지 자체 소방대원, 소방관련학과 대학생 등을 대상으로도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정문호 소방청장은 "국가 전체의 안전관리 수준을 높이려면 소방관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안전관리자들의 대응 수준도 높여야 한다"며 "그동안 중앙소방학교가 주로 소방관 교육에 집중했는데 앞으로는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도 더 신경을 쓰겠다"고 말했다.

눈앞 천장에 불꽃이 활활…실전 같은 중앙소방학교 훈련현장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