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미현 검사
안미현 검사
검사가 민원인의 고소장을 위조한 혐의에 대해 법원이 ‘선고유예’판결을 내리자 법조계 ‘내부고발자’들이 잇따라 비판하고 나섰다. 시민단체인 투기자본감시센터도 21일 성명을 내고 “법원은 공문서를 위조했고,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로 징계조차 받지 않은 검사에게 선고유예의 판결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작년 강원랜드 사건 당시 수사외압 의혹을 제기한 안미현 의정부지검 검사는 지난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죄질이 가볍다고 볼 수 없단다. 심지어 변호인이 공문서위조죄가 안 된다며 다투었다”며 “그런데 반성하고 있고, 이 건으로 사직했으며, 가정환경 등을 고려해 선고유예가 됐다”고 지적했다. 또 “사직 덕분에 징계는 받지 않아도 됐으며 가정환경 덕에 사직도 고민할 필요 없는 집안 분”이라며 “웬만하면 재판결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여기지만 참...”이라며 이번 판결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A 전 검사는 2015년 부산지검에서 근무할 당시 한 민원인의 고소장을 분실하자 해당 민원인이 냈던 다른 고소장의 표지를 복사해 붙였고 상사의 도장도 임의로 찍어 공문서를 위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19일 부산지법 형사5단독(서창석 부장판사) 재판부는 그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징역 6월에 선고유예 결정을 내렸다. 선고유예란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일정한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한 것으로 무죄판결을 제외하고는 가장 낮은 형의 선고다. 선고유예를 받은 날로부터 2년이 경과하면 유죄판결 선고는 없었던 것과 같은 효력을 갖게 된다. 서창석 부장판사는 “피고인은 검사로서 법을 수호해야할 책무가 있음에도 자신의 실수를 무마하기 위해 공문서를 위조한 죄가 가볍지 않다”면서도 “다만 피고인이 분실한 고소장 자체를 위조한 것이 아니라 사건기록표지가 위조된 것으로 중요한 문서라고 볼 수 없다. 피고인이 초범이고 피고인의 나이, 가정환경, 범행의 동기와 수단,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참작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안미현 검사는 “공문서위조는 10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규정돼 있다”며 “그런데 선고유예이니 죄는 있되 너무나 처벌하고 싶지 않은 간절한 마음이 담긴 결과”라고 지적했다. 검찰내 성범죄를 폭로하며 ‘미투운동’을 촉발시킨 서지현 검사와 사법행정권 남용의혹을 잇따라 제기한 류영재 춘천지법 판사도 이에 동의하는 댓글을 달았다.
임은정 검사 /연합뉴스
임은정 검사 /연합뉴스
임은정 부장검사도 “검사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실무관에게 이런 범죄를 시킨 것은 강요죄에 해당하고, 위조한 고소장을 결재 상신한 것은 사문서위조죄 및 위조사문서행사죄 등이 성립한다”며 “이러한 혐의를 당시 검찰이 기소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이연주 변호사
이연주 변호사
검찰 출신으로 검찰개혁에 목소리를 높여온 이연주 변호사도 지난 20일 페이스북에서 “민원인이 작성해 공무소에 제출한 문서는 그대로 접수, 보관, 처리돼야 하고, 담당하는 공무원에 의해 어떠한 조작이 가해졌다는 것 자체가 공무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파괴하는 일”이라면서도 ”이번 판결은 엘리트들의 멋진 콜라보레이션“이라고 지적했다. A 전 검사를 변호한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지칭한 것이다.

한 전직 검사의 불법 행위에 대한 법원 판결에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은 이 사건이 단순한 개인 사건이 아니라 검찰 개혁과도 엮여 있기 때문이다.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외압 의혹도 끊이지 않게 제기되고 있다. 2015년 당시 부산지검에 근무했던 한 검사는 “부친이 유력인사인데다 여러가지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 당시 부산지검 검사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당시 A검사에 대해 검찰 고위층이 지나치게 비호하는 발언을 했고, 불법 행위에도 징계 없이 사표를 받아준 것도 당시 일선 검사들에겐 불만의 ‘도화선’이 됐다는 분석이다.

한편 당시 검찰의 수사 무마의혹으로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된 김수남 전 검찰총장 등 검찰 간부 4명에 대한 서울지방경찰청의 수사도 이번 법원 판결로 동력이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