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정무수석과 정부부처 차관 등 고위 공직자를 사칭하며 국책사업을 따내려 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나 차관인데…" 국책사업 따내려한 '간 큰' 사기꾼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공무원자격사칭 및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등의 혐의로 김모씨(56) 등 4명을 검거했다고 9일 밝혔다. 경찰은 주범인 김씨는 구속, 나머지 3명은 불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작년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고위 공무원 행세를 하며 이득을 챙기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범인 김씨는 공범 중 한 명인 강모씨(50)가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과 성이 같다는 점을 이용해 강씨가 대표인 유령법인을 세웠다. 두 곳의 부산 소재 대학 총장실에 연락해 교육부 차관을 사칭하며 “청와대 정무수석의 부탁”이라며 “사촌동생인 강씨가 세운 드론 제조 회사를 대학 산학협력단에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이후 한 사립대 사무실을 빌리는 데 성공했고 대학으로 주소를 옮긴 김씨 일당은 국회의원과 교육부, 해양수산부 차관을 사칭하며 다수의 공공기관에서 보고서와 국가연구개발 용역사업 관련 정보를 얻어냈다. 산림청과 감사원, 특허청,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접촉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이들은 한 연구기관에서 발주한 114억원 규모의 국가연구개발사업 입찰에도 참여했다.

경찰은 “입찰 결과가 나오기 전 검거해 경제적 피해는 없었지만 이들이 붙잡히지 않았다면 유령회사가 포함된 컨소시엄이 수주를 따낼 가능성이 컸다”며 “입찰 성공 시 일당이 받을 1년치 수주 규모는 6억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범행 과정에서 김씨 일당은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이 중 한 명이 운영하는 작은 신발밑창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던 외국인 근로자 명의로 선불폰을 개통해 사용했다. 경찰은 “이들이 수십 곳의 공공기관에 전화한 것으로 확인돼 추가 범행이 있는지 계속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