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11일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해온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관계자들이 서울 재동 헌재 앞에서 환호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hankyung.com
헌법재판소는 11일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해온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관계자들이 서울 재동 헌재 앞에서 환호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hankyung.com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의료계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다만 후속 법 작업 등을 통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법제이사는 “낙태죄는 여성 신체를 국가가 통제하는 사문화된 법 조항이라는 쪽으로 인식이 변했다는 것을 고려한 결정”이라며 “다만 임신 초기만 낙태를 허용하도록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은 아쉽다”고 했다. 의료계에서는 그동안 낙태한 산모와 의사를 처벌하는 조항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처벌 조항이 있었지만 일부 의료기관은 임신 여성의 요구에 따라 낙태 수술을 해왔다. 환자당 수술비는 50만~100만원 정도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국내에서 낙태 수술을 받은 여성은 5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수술한 가장 큰 이유는 아이를 낳으면 학업, 직장 등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다. 경제적 이유나 자녀계획 때문에 낙태를 선택한 여성도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번 헌재 결정으로 낙태 수술 환자가 크게 늘어날 위험이 높다고 우려했다. 정민형 경희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유전자 검사가 발달해 태아 단계에 발현되는 단순한 유전적 이상도 상당 부분 확인할 수 있는 시대”라며 “낙태가 급증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일부 병원이 돈벌이 수단으로 낙태 수술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천주교와 개신교 등 종교계는 이날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유감을 표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 명의 입장문에서 “태아의 기본 생명권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고착시키고 남성에게서 부당하게 면제하는 결정”이라고 밝혔다. 한국교회연합도 성명에서 “생명 말살과 사회적 생명경시 풍조의 확산을 도외시한 지극히 무책임하고 편향된 판결”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반면 여성계는 “성평등 사회를 향한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렸다”며 환영했다. 여성단체연합은 “여성의 존엄성,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고 여성들의 삶을 억압하던 낙태죄를 폐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여성 모두의 승리”라고 밝혔다. 한편 여야는 헌재 결정에 대해 대체로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낙태죄 관련 법안을 조속히 재정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