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냐, 흉물이냐…'성동구치소 보존' 갈등
서울시가 주민 반발에도 성동구치소(사진) 일대 개발계획(지구단위계획)에 구치소 건물 일부를 보존하는 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서울시는 “근대적 구치소로 건물 자체에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며 보존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1970년대에 지은 구치소 건물이 문화적 가치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반발해 논란이 되고 있다.

문화재냐, 흉물이냐…'성동구치소 보존' 갈등
“50년 안 된 감옥, 남길 만한 시설인가”

11일 서울시에 따르면 ‘성동구치소 일대 개발기본계획 및 지구단위계획’ 구상안에 기존 성동구치소 건물 일부는 남기는 안이 포함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담장 일부와 구치소 한두 동을 보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남긴 동을 리모델링해 재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지구단위계획 용역을 발주한 SH공사(서울주택도시공사) 관계자도 “서울시에서 기존 구치소 시설을 보존,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말했다. 지구단위계획안의 최종 결과물은 연말께 나올 예정이다.

성동구치소 부지는 서울시 산하 SH공사가 법무부 동부구치소 건설비용을 부담하는 것을 조건으로 소유권을 이전받았다. 송파구 한복판에 있는 데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3곳, 아파트 대단지가 인접해 있어 활용방안을 두고 논란이 일어왔다. 지난해 9월 국토교통부는 송파구와 협의 없이 성동구치소 부지를 신규 공공택지지구로 선정해 1300가구의 신규 분양 및 임대아파트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여기에 지난해 일부 공개된 서울시의 성동구치소 개발 기본구상안에 전체 8만3777㎡ 부지 중 5%인 약 4000㎡ 넓이의 구치소 건물을 보존하는 안이 드러나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가중됐다.

인근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국토부가 주민과 상의도 없이 택지계획을 발표한 데다, 서울시까지 주민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감옥을 보존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주민들은 감옥을 보존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기준이 분명치 않다고 말한다. 성동구치소 건물은 1977년에 지어졌다. 이보다 오래된 1968년에 지은 영등포구치소 건물은 완전히 철거돼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인근 아파트 주민인 민모씨는 “문화적 가치가 있거나 존재 자체가 긍정적인 의도로 지어진 시설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지만 성동구치소는 ‘경제사범’들이 주로 수감되던 곳”이라며 “인근에만 세 곳의 학교가 있는데 학생들에게 표본으로 남길 만한 시설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송파구는 난감해하고 있다. 박성수 송파구청장은 “성동구치소 보존구역이 너무 크면 주민들에게 피해를 감수하라는 것이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며 “서울시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 남기기 일환”

박원순 서울시장은 일부 주민의 오해가 있었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미리 주민들에게 설명해 합의된 것”이라며 “건물을 그대로 남기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부를 리모델링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존 시설을 유지해 특색 있는 장소로 꾸미고 지역 가치를 반영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망루가 있는 감시체계나 방공호의 존재 등은 근대 교정정책을 잘 드러내는 부분”이라며 “망루형 구치소였던 영등포구치소 등이 철거됐기 때문에 마지막 남은 유산으로 남기자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2017년 잠실주공5단지에 대해 역사 흔적 남기기의 일환으로 단지 내 굴뚝과 타워형 주동을 보존하라고 요구해 논란을 일으켰다. 결국 잠실5단지는 굴뚝을 없애고 타워형 주동을 본래 15층에서 5층만 남겨 도서관으로 꾸미기로 합의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