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몰릴 땐 더 일하되 주당 근로시간은 맞추는 거죠
아이스크림 공장과 에어컨 생산라인은 여름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겨울엔 일감이 확 줄어든다. 컴퓨터 보안업체 직원들은 서버 오류나 해킹 같은 돌발상황이 터지면 즉각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가야 한다. 직원 300명이 넘는 큰 기업들에 적용되기 시작한 ‘주 52시간 근무제’가 조만간 모든 기업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업종 특성이나 계절적 요인 등으로 인해 업무량이 불규칙한 곳에선 근무시간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유연근무제의 일종인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이런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로 꼽힌다.

바쁠 땐 더 일하고, 한가할 땐 더 쉬고

탄력근로제란 업무량이 집중될 때 초과근무를 하는 대신 업무량이 적은 시기엔 일하는 시간을 줄여 ‘주당 평균’을 법정노동시간 이내로 맞출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현행 근로기준법 51조에 따르면 탄력근로제는 취업규칙을 근거로 2주 이내, 노사 합의 시 최장 3개월 단위까지 허용된다.

예를 들어 3개월간 평균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에 부합하면, 그 기간 동안에 일이 몰릴 땐 주당 최대 64시간까지 일해도 괜찮다.

대량 주문을 받은 납품업체나 새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소프트웨어업체는 일이 몰리는 특정 시기에 밤낮없이 일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바쁠 때 잠깐 일손을 덜자고 직원을 무작정 더 뽑아두기가 어렵다. 기존 직원들의 근무 일정을 여유롭게 조절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6주를 더 많이 일하면 나머지 6주는 반드시 근무를 줄여야 하는 셈이어서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재계는 지난해 근로시간 단축이 법제화되자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 내지 1년으로 확대해 달라”고 요구해왔다.

美·日·佛은 1년 단위 탄력근로제가 대세

단위기간을 1년으로 늘리면 직원들이 6개월은 집중적으로 일하되 나머지 6개월은 업무량을 확 줄일 수 있다. 반면 노동계는 수개월 연속으로 업무 부담이 가중된다면 근로시간 단축의 취지와 어긋난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선진국 사례를 보면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은 탄력근로제를 1년 단위로 운용하고 있다. 직원들이 비수기에 한 달 넘게 휴가를 내고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올초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최장 6개월까지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국회는 이 내용을 반영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여야의 첨예한 ‘대치정국’ 탓에 진척이 더디다. 자유한국당은 단위기간을 최장 1년으로 더 늘리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으나 여권은 부정적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일 함께 국회를 찾아 “굉장히 절실하고 절박하다”며 신속한 법 개정을 호소하기도 했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