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면서 소리 지르거나 과격한 행동…렘수면 장애 환자, 파킨슨·치매 위험 높아"
자면서 소리를 지르거나 과격한 행동을 보이는 특발성 렘수면 행동장애 환자는 파킨슨병이나 치매가 생길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병원은 정기영 신경과 교수(사진) 등 세계 11개국 24개 센터 수면 및 신경분야 전문가들이 특발성 렘수면 행동장애 환자 1280명을 장기추적해 환자 4명 중 3명에게서 퇴행성 신경질환이 생겼다고 발표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뇌과학 분야 국제학술지인 브레인 최신호에 실렸다. 북미, 유럽 의료기관들이 참여한 이번 연구에 정 교수는 아시아 의사 중 유일하게 참여했다.

잠을 잘 때는 렘수면과 비렘수면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렘수면은 쉽게 말해 몸은 자고 있지만 뇌는 깨어 있는 상태다. 대부분 이때 꿈을 꾼다. 인간의 뇌가 낮에 기억했던 내용을 정리하고 장기 기억창고에 저장하는데 이때 꿈을 꾼다. 그동안 고민하던 내용이 꿈에 나와 해결책이 생각나거나 낮 동안 경험한 일을 꿈으로 꾸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오래된 일들이 꿈속에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렘수면을 할 때는 근육이 이완돼 긴장도가 떨어지면서 움직이지 않는 게 정상이다. 악몽을 꾸면서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치지 못하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다. 몸이 완전히 이완돼 손발조차 움직이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렘수면 행동장애 환자는 렘수면을 하는 동안에도 근육이 마비되지 않고 긴장돼 있다. 깨어 있을 때처럼 근육이 움직이기 때문에 잠을 자면서 꿈속에서 하는 행동을 그대로 하게 된다. 자다가 소리를 지르거나 옆에서 자는 사람을 때리기도 한다. 쫓기는 꿈을 꾸면 도망가는 행동을 따라하게 돼 갑자기 일어나 벽이나 침실 물건 등에 부딪치는 일도 흔하다. 수면 중 외상을 입는 환자가 많다. 비슷한 수면장애인 몽유병은 깨어난 뒤 자신이 잠을 자면서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지만 렘수면 행동장애 환자는 깨어난 뒤 악몽을 또렷이 기억한다. 대개 렘수면 행동장애 증상은 잠에서 깨기 전 새벽에 많이 나타난다. 60대 이후 남성에게 많다. 전체 인구의 0.38~0.5% 정도가 렘수면 행동장애를 앓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노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2.01%가 렘수면 행동장애로 나타났다. 사람에 따라 매일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며칠에 한 번씩 증상을 호소하기도 한다.

연구팀은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특발성 렘수면 행동장애로 진단받은 환자 1280명을 추적관찰했다. 환자 평균 나이는 66.3세다. 이들을 최대 19년, 평균 4.6년 동안 추적관찰했다. 그 결과 매년 6.3%의 특발성 렘수면 행동장애 환자에게 퇴행성 신경질환이 생겼다. 12년 뒤에는 환자의 73.5%가 퇴행성 신경질환을 호소했다. 운동검사에서 이상이 있었거나 후각에 문제가 있던 환자, 변비, 성기능 장애 등을 호소한 환자는 퇴행성 신경질환으로 발전할 위험이 더 높았다. 이들 증상이 함께 있는 사람은 퇴행성 신경질환이 생기지 않도록 더욱 주의해야 한다.

특발성 렘수면 행동장애는 파킨슨병, 루이체 치매 등의 전 단계 질환으로 알려졌다. 아직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치료제는 없다. 하지만 다른 퇴행성 신경질환처럼 일찍 치료를 시작하면 질환이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연구팀은 내다봤다. 환자 삶의 질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정 교수는 “특발성 렘수면 행동장애가 퇴행성 신경질환으로 진행된다는 점은 알려졌지만 이를 다기관 장기 추적을 통해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연구를 통해 다양한 위험인자도 함께 밝혔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