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 28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2018 대한민국 고졸인재 잡콘서트’가 열렸다. 행사장이 구인공고 등을 확인하려는 직업계고 학생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작년 3월 28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2018 대한민국 고졸인재 잡콘서트’가 열렸다. 행사장이 구인공고 등을 확인하려는 직업계고 학생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산업화 이후 세계 각국은 직업교육 체제를 정비해 숙련 인력을 양성해왔다. 산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을 적재적소에 공급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몇 년 새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흐름이 등장하면서 직업교육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신기술의 등장으로 기존 직업교육 시스템으로는 길러낼 수 없는 인력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영국·일본·중국·독일 등 주요국들이 직업교육 혁신 작업에 나선 배경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한국에선 직업교육이 갈수록 외면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新산업 느는데…직업교육 예산 36% 줄인 韓, 6배 늘린 中
작년 서울 특성화고 54% 정원 미달

한국의 직업교육은 양과 질에서 모두 뒷걸음치고 있다. 전체 고등학생 중 직업계고 학생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대 중반만 해도 40%를 웃돌았는데 지난해엔 17.5%로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44%)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학생들이 직업계고 진학을 꺼린 탓에 작년 말 진행한 2019학년도 서울지역 신입생 모집에선 전체 특성화고의 54%에 달하는 38개교가 모집정원을 채우지 못해 대규모 미달 사태가 발생했다.

직업계고 관계자들은 정부의 정책 실패도 주요인으로 꼽고 있다. 조용 한국중등직업교육학회 회장(경기기계공고 교장)은 “이명박 정부 때 ‘고졸 성공 시대’란 슬로건을 내걸고 고졸 취업 활성화 정책을 펴면서 직업계고가 주목받았다”며 “하지만 박근혜 정부 때 추진한 ‘청년일자리 정책’에선 고졸 취업이 상대적으로 외면받았고, 이 추세는 문재인 정부 초기에도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직업계고 출신 학생들의 취업률은 2009년 16.7%로 저점을 찍은 뒤 매년 꾸준히 상승해 2017년 50.6%로 높아졌다가 지난해엔 40%대로 다시 떨어졌다. 직업계고 학생의 현장실습에 대한 안전규제가 강화된 영향이 컸다. 직업교육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은 관련 예산에서도 드러난다. 중등 직업교육과 관련한 정부 예산(특별교부금 기준)은 2016년에만 해도 2015억원이었지만 이후 꾸준히 감소해 올해는 1281억원 규모로 쪼그라들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2017년부터 전체 교부금에서 특별 교부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 것(4%→3%)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금융위기 후 직업교육 강화하는 英

영국은 국가가 직업교육에 깊숙이 개입하지 않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탄탄한 제조업 기반을 갖춘 독일이 금융위기 직후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면서 직업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직업교육 개혁안 발표 당시 닉 볼스 기업혁신기술부 장관은 “직업교육 시스템을 혁신하는 것은 현재 영국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도전 중 하나”라며 “우리의 경쟁자들은 이미 우리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고 위기감을 토로했다.

영국의 직업교육 개혁안은 독일의 도제교육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도제교육이란 학생들이 학교와 기업현장을 오가면서 기술을 익히는 직업교육의 한 방식이다. 영국은 지금까지 제한된 범위 내에서 도제교육을 시행해왔는데 이를 대폭 확대키로 했다. 이를 위해 종업원 규모 300인 이상 기업들은 의무적으로 도제생(현장실습생)을 받도록 하고, 이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도제세’도 신설키로 했다.

‘일자리 천국’ 日도 직업교육 혁신

직업교육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취업률 제고다. 일본은 경제활성화와 학령인구 감소가 맞물려 일자리가 넘쳐난다. 작년 3월 졸업한 대졸자들의 취업률은 98%로 100%에 육박했다. 신입사원을 데려오는 직원에게 포상금을 주는 기업들도 등장했다. 일본은 그러나 현재의 직업교육 시스템으로는 일본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없다고 판단해 5년간의 준비 작업을 거쳐 4년제 ‘전문직 대학’을 신설했다. 2년제 전문대와 4년제 일반대를 혼합한 대학으로, 특정 분야의 전문 기술을 기반으로 창업까지도 가능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졸업이수 학점의 3분의 1 이상을 현장실습으로 취득하고, 전임교원의 40% 이상을 기업 현장에서 충원한다.

중국도 지난달 14일 직업교육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반도체, 2차전지, 빅데이터, AI 등의 산업에서 필요한 고급 숙련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다. 고급 기술 인력 양성을 전담하는 대학 50곳과 직업훈련기관 300곳을 전국 각지에 설립한다는 게 골자다.

중국 정부는 직업교육 관련 예산도 대폭 늘렸다. 2013년 110억달러였던 직업교육 관련 예산은 2017년에는 600억달러로 4년 만에 약 6배로 증가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