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인 체류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한국에 거주하는 불법체류자가 지난해 전년 대비 10만 명 넘게 늘었다. 전체 불법체류자는 35만 명을 넘어섰다. 증가세도 가파르다. 산업 현장과 학계에서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바람을 타고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한국 원정을 떠나는 외국인이 급증한 탓”이라며 “최저임금이 오르는 만큼 불법체류자 유입 요인도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태국에서 온 불법체류자들이 작년 10월 강원 평창군에 있는 한 채소밭에서 수확 작업을 하고 있다.  /한경DB
태국에서 온 불법체류자들이 작년 10월 강원 평창군에 있는 한 채소밭에서 수확 작업을 하고 있다. /한경DB
관광비자로 들어와 취직

21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불법체류자는 35만5126명으로 41.4% 급증했다. 과거 한 해 동안 불법체류자가 가장 많이 늘어난 게 4만2000여 명(2017년)인데 지난해에는 10만4000여 명 늘었다.

불법체류자가 늘어나는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출입국 관리가 허술해졌거나, 국내에 체류할 유인이 커져서다. 출입국 관리 기준이 급격하게 바뀐 것은 없다. 산업계와 학계에서 유례없는 불법체류자 급증 배경을 최저임금 상승으로 꼽는 이유다. 지난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7530원으로 전년 대비 16.3% 급증했다.

과거에는 1년 이상 취업이 가능한 체류자격을 갖추고 한국에서 일하다 체류 기간이 끝났는데도 눌러앉는 ‘장기형’ 불법체류자가 많았다. 1년 미만 체류자격을 가진 단기 체류자가 불법 체류한 경우는 5년 전만 하더라도 전체 중 절반가량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이 비율은 74%까지 급증했다. 불법체류자 4명 중 3명은 단기 체류 자격으로 한국에 들어왔다가 그냥 눌러앉는 경우라는 얘기다. ‘단타형’ 불법체류자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된 입국 통로는 60일간 국내 체류가 가능한 관광비자다. 태국 등 현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한국의 최저임금을 내세우며 한국행을 권유하는 브로커 글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서 한 달만 일하면 태국에서 8개월 일한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식의 광고들이다. 이렇게 한국에 온 외국인은 주로 공장 생산라인이나 농장 수확 작업에 투입된다. 지난해부터 농촌에는 브로커와 함께 일하러 다니는 외국인 노동자가 부쩍 늘었다. 이들이 받는 일당은 8시간 기준으로 남자 12만원, 여자 8만원. 최저임금 보다 훨씬 높다. 한 농업인은 “지난해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이들 일당도 1만원씩 올랐다”고 말했다.

공장을 운영하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사업장마다 외국인 채용 인력이 제한되기 때문에 인력이 부족한 곳에서는 불법체류자를 쓰는 것”이라며 “주휴수당 등은 따지지 않고 최저임금만 주면 20대 젊은 동남아 인력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글로벌 시대에 한 국가의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이 다른 국가의 인력을 끌어들이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며 “올해도 최저임금을 대폭 올린 만큼 한국에서 불법체류자로라도 일하려는 외국인이 더욱 몰려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8350원으로 전년 대비 10.9% 올랐다.

정부 단속도 한계

불법체류자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자 정부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새로 불법체류자가 된 외국인은 19만6527명이다. 전년(10만4977명)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불법체류자 증가 속도가 정부의 행정력을 뛰어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올해도 자진출국 제도 등을 통해 불법체류자 감소에 애쓰고 있다. 하지만 현장의 성과는 미미하다는 평가다.

정확한 원인 분석을 하지 않은 채 단속 강화에만 나서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법무부는 최저임금과 불법체류자 급증 원인을 애써 연결하려 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최저임금 강화 기류와 부딪힐 수 있어서다. 현장 공무원에게 단속 강화만 반복 주문하고 있다. 지방에 있는 한 출입국관리사무소 공무원은 “현재 인력으로 불법체류자 단속을 제대로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신고 들어온 것도 단속하기가 벅차다”고 하소연했다.

출입국 통제 강화가 당장의 해결책처럼 보이지만 이마저 쉽지 않다. 외교 문제와 얽힐 수 있어서다. 한 출입국 관계자는 “제대로 된 입국 서류를 준비했는데도 이유없이 입국을 거부하고, 그런 사례가 해당국에 알려지면 자칫 외교적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며 “국내 관광산업과도 연결돼 있는 만큼 출입국 강화에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