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법원장 피의자 소환에 진보·보수 단체들 엇갈린 목소리기자회견 열린 대법원 앞, 목소리 뒤섞여…시위·집회로 교통 혼잡사법 농단 의혹의 정점에 선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 11일 서울 서초동 일대에는 양 대법원장의 구속을 촉구하는 이들과 검찰 수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뒤섞였다.한국진보연대와 민주노총, 참여연대, 민중당 등이 연대한 '양승태 사법 농단 공동대응 시국회의'는 이날 오전 8시 양 대법원장이 조사를 받기로 예정된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 동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법 농단의 몸통인 양승태를 구속 처벌하라"고 촉구했다.이들은 "(양 전 대법원장이) 강제징용 등 재판에 박근혜 정부의 입장에 맞춰 개입했음이 밝혀졌으며, 정책에 반대한 법관에게 불이익을 준 점도 확인됐다"고 주장했다.이어 "사법부의 신뢰도 추락은 이런 거짓으로 국민을 속이고 우롱하면서 확대됐다"며 "양 전 대법원장을 철저하게 수사해 사법 농단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야말로 사법부 신뢰를 되찾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이들은 특히 양 전 대법원장이 이날 검찰에 출석하기 직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발표하는 것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기자회견에 참석한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대법원 앞 기자회견은 적폐 판사들이 똬리를 틀고 있는 사법부에 동정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얄팍한 꼼수"라고 말했다.임지봉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도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신분이 아니다"라며 "전 대법원장이 아닌 사법 농단을 통해 국정을 어지럽힌 중차대한 대형 사건의 총 책임자로서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를 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반면 보수 성향 단체인 애국문화협회와 자유연대, 자유대한호국당, 턴라이트 등은 같은 시간 중앙지검 서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의 수사를 규탄했다.이들은 '문재인 정권의 하수인 검찰을 규탄한다'는 현수막을 설치하고 손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님 힘내세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섰다.이들이 설치한 현수막에는 '합리적 범위 내에서의 과거사 정립,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사회 안정을 고려한 판결, 국가 경제발전을 최우선적으로 염두에 둔 판결, 노동개혁에 기여할 수 있는 판결, 교육개혁에 초석이 될 수 있는 판결, 이것이 사법 농단인가'라는 문구도 담겼다.각종 단체의 시위는 양 전 대법원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힌 대법원 정문 앞에서 한데 뒤섞였다.민중당과 보수 단체들, 법원 판결에 불만을 품은 1인 시위자들은 양 전 대법원장이 도착하기 전부터 각자의 목소리를 냈다.이날 대법원 앞에는 총 150명가량(경찰 추산)이 모여 1개 차로를 점거하면서 일대 교통이 불편을 겪었다.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 관계자들은 양 전 대법원장이 입장을 밝힌 대법원 정문 위에 올라 '피의자 양승태는 검찰 포토라인에 서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보였다.일부 보수 단체 회원과 민중당 관계자가 언성을 높였고 몇몇 시위자는 대열을 통제하려는 경찰에 반발하며 언성을 높이고 가벼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차량 또는 사람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물병이나 피켓 등 물건을 투척하면 폭행죄, 공무집행 방해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죄 등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연합뉴스
'사법농단' 의혹 사건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대법원 정문 앞에서 "국민들께 송구하다"며 "모든 것이 저의 부덕의 소치"라고 대국민 입장을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9시께 서초동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관들이 많은 상처를 받고 여러 사람이 수사당국으로부터 조사까지 받은 데 대해서 참으로 참담한 마음"이라며 이처럼 말했다.이어 "이 모든 게 제 부덕의 소치로 인한 것이고 따라서 그 모든 책임은 제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양 전 대법원장은 다만 "이 자리를 빌어 국민 여러분께 우리 법관들을 믿어 주실 것을 간절히 호소하고 싶다. 절대 다수의 법관들은 국민 여러분에게 헌신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그는 "이 사건에 관련된 여러 법관들도 자기들 각자의 직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법과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했고, 저는 그 말을 믿고 있다. 나중에라도 만일 그들에게 과오가 있다고 밝혀진다면 그 역시 제 책임이고 제가 안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이어 "오늘 조사 과정에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기억나는 대로 답변하고, 또 오해가 있으면 이를 풀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할 것"이라며 "편견이나 선입견 없는 공정한 시각에서 이 사건이 소명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양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 앞에서 이 같은 입장을 밝힌 것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이 피의자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된 상황에서 검찰 포토라인에는 서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에서 검찰청사로 9시7분께 이동한 뒤 서울중앙지검 청사 1층 중앙문을 통해 곧바로 조사실로 들어갔다. 앞서 검찰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에 개입하고 '법관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등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의혹을 받는 양 전 대법원장에게 이날 오전 9시 30분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받으라고 통보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해 6월 1일 경기 성남시 자택 인근 놀이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의혹을 전면 부인한 이후 7개월여 만이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