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국가대표인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코치를 성폭행 혐의로 추가 고소한 가운데 또 다른 성폭력 피해 선수들이 폭로를 예고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뒤늦게 성폭력 체육지도자를 영구 제명하고, 선수들을 대상으로 피해 상황을 전수조사하기로 하는 등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체육계의 구조적인 문제에 원인을 둔 폭력 문제가 정부 대책으로 뿌리 뽑힐지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심석희 이어…빙상계 성폭행 피해선수 또 나와
성폭력 고발 확산

빙상 선수와 지도자 등으로 구성된 젊은빙상인연대는 “빙상계 비위를 조사하다 심석희 외에도 성폭력 피해 선수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 중 두 명의 피해 선수가 용기를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지훈 젊은빙상인연대 자문변호사는 “피해 선수들과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으며, 성폭력 범죄 가해자들의 실명을 공개하고 형사고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 전 코치에게 폭행을 당했지만 합의해줬던 선수들도 심 선수가 성폭행당한 사실이 알려지자 마음을 바꿔 이날 “조 전 코치를 엄벌에 처해달라”는 탄원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은 조 전 코치의 항소심 선고공판은 오는 14일 열린다.

심 선수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세종의 임상혁 변호사는 이날 “조 전 코치의 폭행과 성폭행은 서로 무관하지 않은데 조 전 코치는 경기력 향상을 위해 때렸다고 주장하는 등 얼토당토않은 변명을 늘어놨다”며 “심 선수는 지금도 매일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우려해 용기를 냈다”고 밝혔다. 경찰은 기존 폭행 혐의와 심 선수가 밝힌 성폭행 피해 사이에 연관성이 큰 것으로 보고 이 부분을 집중 수사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조 전 코치의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을 압수해 디지털포렌식 수사를 하고 있다”며 “심 선수가 주장한 성폭행 시점 전후로 심 선수와 조 전 코치의 대화 내용을 분석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범행 장소 주변의 폐쇄회로TV(CCTV) 영상은 저장 기간이 지나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조 전 코치 측은 “절대 성폭행한 적이 없다”고 거듭 부인했다. 조 전 코치의 변호인은 “조 전 코치를 구치소에서 만나고 왔는데 심 선수의 주장에 대해 굉장히 당황스러워했다”며 “자신은 성폭행한 적이 없다며 억울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성추행도 영구 제명…처벌 강화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하고 체육계 성폭행 비위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문체부는 성폭력 가해자가 영구 제명 조치 대상이 되는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대한체육회 규정 등에 따르면 현재는 강간·유사강간이나 이에 준하는 성폭력의 경우에만 영구 제명하게 돼 있다. 앞으로는 ‘중대한 성추행’도 영구 제명 대상에 포함된다.

문체부는 또 성폭력 관련 징계자가 국내외 체육 관련 단체에 종사할 수 없도록 막을 예정이다. 이와 함께 전·현직 국가대표 선수들을 대상으로 성폭력 피해 전수조사에도 나설 계획이다. 노 차관은 “사건을 예방하지 못하고 사건 이후 선수를 제대로 보호하지도 못해 선수와 가족, 국민에게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정치권도 폭력이나 성폭력을 저지른 체육지도자를 영구 제명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 이른바 ‘심석희법’을 초당적으로 발의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10일 기자회견을 연다.

체육계의 폐쇄적인 구조를 혁신하지 못하면 허울뿐인 대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날 대한체육회가 발표한 ‘2018 스포츠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선수들이 감독·코치에 의한 성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1.7%에 불과했지만, 조 전 코치 사례처럼 집계되지 않은 폭력이 만연해 있다는 얘기다. 사실을 밝히더라도 체육단체는 좁은 인맥으로 촘촘히 얽혀 있어 가해자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경우가 적지 않다. 2015년 제자를 성추행한 한 실업팀 코치에게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영구 제명 처분을 내렸지만,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가 3년 자격정지로 징계 수위를 낮춘 것이 대표적이다.

이현진/조희찬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