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석희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가 조재범 전 코치를 폭행에 이어 성폭행 혐의로 추가 고소한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가 9일 체육계 전수조사 등 성폭행 근절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을 내놨다. 일각에서는 체육계의 구조적인 문제에 원인을 둔 폭력 문제가 정부 대책으로 뿌리 뽑힐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심 선수의 법률대리인 측은 “심 선수는 지금도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우려해 용기를 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 전 코치 측은 “절대 성폭행을 한 적이 없다”고 거듭 부인했다.
'심석희 파문'…체육계 성추행 전수조사 나선다
성추행도 영구 제명…처벌 강화

노태강 문체부 제2차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하고 체육계 성폭행 비위 근절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문체부는 우선 성폭력 가해자가 영구 제명 조치 대상이 되는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대한체육회 규정 등에 따르면 현재는 강간·유사강간이나 이에 준하는 성폭력의 경우에만 영구 제명하게 돼 있다. 앞으로는 ‘중대한 성추행’도 영구 제명 대상에 포함된다. 문체부는 또 성폭력 관련 징계자가 국내외 체육 관련 단체에 종사할 수 없도록 막을 예정이다. 조 전 코치는 심 선수를 폭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영구 제명당한 뒤 중국 대표팀에 합류하려던 사실이 드러났다. 문체부는 또 전·현직 국가대표 선수들을 대상으로 성폭력 피해 전수조사에도 나설 계획이다. 노 차관은 “이런 사건을 예방하지 못하고 사건 이후 선수를 제대로 보호하지도 못해 선수와 가족, 국민에게 사과드린다”며 “그간의 모든 제도와 대책을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체육계의 폐쇄적인 구조를 혁신하지 못하면 허울뿐인 대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날 대한체육회가 발표한 ‘2018 스포츠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선수들이 감독·코치에 의한 성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1.7%에 불과했지만, 조 전 코치 사례처럼 집계되지 않은 폭력이 만연하다는 얘기다. 사실을 밝히더라도 체육단체는 좁은 인맥으로 촘촘히 얽혀 있어 가해자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15년 제자를 성추행한 한 실업팀 코치에게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영구 제명 처분을 내렸지만,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가 3년 자격정지로 징계 수위를 낮춘 것이 대표적이다.

심 선수, 매일 악몽에 시달려

이날 심 선수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세종의 임상혁 변호사는 “조 전 코치의 폭행과 성폭행은 서로 무관하지 않은데 조 전 코치는 경기력 향상을 위해 때렸다고 주장하는 등 얼토당토않은 변명을 늘어놨다”며 “심 선수는 지금도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우려해 용기를 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내용은 심 선수가 제출한 고소장에도 담겼다. 경찰은 기존 폭행 혐의와 심 선수가 밝힌 성폭행 피해 사이에 연관성이 큰 것으로 보고 이 부분을 집중 수사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조 전 코치의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을 압수해 디지털포렌식 수사를 하고 있다”며 “심 선수가 주장한 성폭행 시점 전후로 심 선수와 조 전 코치의 대화 내용을 분석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범행 장소 주변의 폐쇄회로TV(CCTV) 영상은 저장 기간이 지나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조 전 코치의 변호인은 “오늘 조 전 코치를 구치소에서 만나고 왔는데 심 선수의 주장에 대해 굉장히 당황스러워했다”며 “자신은 성폭행을 한 적이 없다며 억울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현진/조희찬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