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의혹' 양승태, 11일 피의자 신분 소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정점에 서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사진)이 오는 11일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는다. 전직 대법원장이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건 사법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사상 첫 대법원장 피의자 조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은 11일 오전 9시30분 양 전 대법원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소환 조사할 예정이라고 4일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양 전 대법원장 혐의에 대한 추가 증거를 확보하는 등 수사가 상당 부분 진척됐기 때문에 소환하는 것”이라며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혐의를 합쳐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조사 내용이 방대하고 심야조사를 하지 않을 것이어서 추가 소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검찰 소환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민사소송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일선 법원의 위헌제청 사건 등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또 헌법재판소 내부정보 유출과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에 대한 사찰 혐의도 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앞서 구속 상태로 재판받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게 혐의와 관련된 문건을 보고받고 승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임 전 차장을 구속기소하면서 44개 범죄사실에 양 전 대법원장을 공범으로 적시했다. 검찰 관계자는 “법원 판례상 뇌물죄 적용 범위가 점차 넓어지듯, 공무원의 지위를 활용한 범죄를 처벌할 유일한 법리인 직권남용죄도 적용 범위가 넓어져야 한다”며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였다.

“물증 없이 진술에 의존”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를 입증하려면 임 전 차장이 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게, 법원행정처장이 대법원장에게 보고한 3단계 과정을 증거로서 밝혀야 한다. 하지만 임 전 차장의 공소장을 보더라도 각 단계를 입증할 물증이 부족하고, 대부분은 법관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내용이라는 게 법원 안팎의 평가다.

검찰은 ‘법원행정처 차장→대법관→대법원장’ 등 통상적인 보고 절차가 아니라 직접보고로 이뤄진 양 전 대법원장의 추가 혐의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두 전 대법관의 구속 영장이 기각되면서 영장전담 판사가 “관련 내용을 보고받고 승인했는지에 관한 혐의 입증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에 대비하려는 포석이다.

한 현직 고위 판사는 “두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실패하면서 수사가 막히자 양 전 대법원장을 압박할 새로운 방식을 찾아보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혐의 내용을 대부분 부인할 것으로 전망된다.

법조계 일각에선 1주일 전 소환 계획을 언론에 공개한 것도 양 전 대법원장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보고 있다. 통상 주요 피의자 소환 일정은 2~3일 전에 밝히는 것이 관례다. 한 특수통 검찰 출신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 소환 전 여론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고윤상/안대규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