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임산부 배려석은 끊임없이 내적 갈등이 벌어지는 곳이다. 일부는 "배려가 의무는 아니지 않냐"며 임산부가 오기 전까지 앉으면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반면엔 "임산부 배지를 깜빡한 초기 임산부들은 양보 받기가 너무 힘들다"면서 애초에 임산부 배려석은 비워두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더 황당한 경험을 한 이도 있다. 만삭인 상태에서 시어머니께 임산부 배려석을 빼앗긴 경우다.

임신 36주차 임산부인 A씨는 점심에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아가, 먹고 싶은 것 없니?"라는 질문에 "소고기가 먹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시어머니는 "그럼 몇 시까지 올 거니?"라고 물으셨다. 즉, 시댁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오라는 뜻이다.

A씨는 "시댁은 지하철과 버스 환승해 1시간 정도 되는 거리"라며 "만삭 임산부 보고 오라는 소리구나 싶어 1차로 섭섭했다"고 털어놨다.

임신 36주 차에 접어든 A씨는 주수에 비해 쌍둥이를 임신한 것만큼 거대하게 배가 커진 상태라 회사에도 미리 휴직계를 낸 상황이었다.

A씨는 "그럼 택시 타고 식당으로 바로 갈까요?"라고 했더니 시어머니는 "돈 아깝게 택시는 왜 타니"고 타박했다. "어머니 저 배도 부르고 숨도 차고 허리 아파 대중교통 타는 게 힘들어요"라고 말하자 시어머니는 "그래 그럼 내가 갈까?"라고 물었다.

썩 유쾌하지 않은 듯한 시어머니의 말투를 느꼈지만 A씨는 속으로 '임신 중이라 감정 기복이 심한 걸거야.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말자'라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A씨 집에 도착한 시어머니는 갑자기 식당을 남편 회사 근처로 바꿨다고 통보했다. 남편의 회사는 버스로 10분, 택시로 2분 거리다. A씨는 시어머니께 "택시 타고 가자"고 제안해 봤지만 거절당했다. 결국 두 사람은 퇴근길 만원 버스에 올랐다.

울고 싶은 심정으로 버스에 탄 A씨를 보고 마침 임산부석에 앉아 있던 여성이 자리를 양보해줬다. 너무 감사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A씨가 "고맙다"고 말하며 앉으려는 찰나, 옆에 서 있던 시어머니가 먼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닌가.

A씨는 "시어머니가 아무리 연장자이시긴 해도 만삭의 며느리를 굳이 버스 태워 놓고, 임산부석까지 뺏어 앉으시니 눈물 날 것 같았다"고 토로했다.

그때 뒷좌석에서 한 아주머니가 자리를 비켜주며 앉으라고 양보해 줬다. A씨는 "친정 엄마 생각도 나고 울 것 같아서 고개만 꾸벅 인사하고 가서 앉았다"고 말했다.

남편을 만난 A씨는 서러워서 결국 울었다. 시어머니는 황당하다는 듯 "잘 와놓고 얘 왜 이러냐"고 말했다.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데 뒤에서 시어머니가 "아이고 맞춰주기 힘들다 힘들어"라고 말하셨다.

서러움이 분노로 바뀌었다. A씨는 "자기 딸, 아니 친구 딸만 되어도 이렇게는 안하겠다"며 택시를 집어탔다. 영문을 모르는 남편에게는 "나 지금 폭발 직전이야"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막상 감정을 가라앉히고 보니 A씨는 자신이 너무 예민했던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어 글을 썼다면서 조언을 구했다.

A씨의 글을 본 네티즌들은 "생판 처음 보는 사람도 자리 비켜주는데, 시어머니 정말 모진 사람이다", "10분 거리면 버스나 택시비나 얼마 차이 안 날 텐데... 배부른 며느리 안쓰럽지도 않나", "택시 타고 친정 가서 푹 쉬어라", "자기 딸이라도 그랬을까?", "남편에게 잘 설명하고 남편 반응에 따라 대처방안이 결정될 것"이라고 함께 공분을 표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