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자문기구인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현직 법관들에 대한 탄핵 절차를 검토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판사들 스스로 동료 판사에 대한 탄핵을 요구한 것은 사법 사상 처음 있는 일로 법원 안팎에 큰 파장이 일 전망이다.

근소한 차로 탄핵 촉구 결의안 채택

"동료판사 탄핵 촉구" 결의한 법관대표회의
전국 각급 법원 대표 판사들로 구성된 전국법관대표회의는 19일 경기 고양 사법연수원에서 2차 정기회의를 열고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특정 재판에 관해 정부 관계자와 재판 진행 방향을 논의하고 의견서 작성 등 자문을 해 준 행위나, 일선 재판부에 연락해 특정 내용과 방향의 판결을 요구한 행위는 탄핵소추절차까지 함께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 위반행위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결의안은 앞서 대구지법 안동지원 소속 권형관·박노을·박찬석·이영제·이인경·차경환 판사 등 6명이 대표판사들에게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연루 판사들에 대한 탄핵 촉구 결의안을 법관대표회의에 발의해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결과다. 당초 예정된 안건엔 포함되지 않았으나 최한돈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비롯한 법관대표 12명이 현장 발의했다. 법관대표회의 내규에 따르면 구성원 10명이 제안하면 현장에서 안건을 상정할 수 있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법관 총 105명 중 과반인 53명이 찬성해 가결됐다. 찬성 측 대표들은 국민의 사법 신뢰 회복을 주요 근거로 든 것으로 전해졌다. “사법 불신에 빠진 국민을 설득할 만한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탄핵소추를 촉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법관대표회의의 중요한 임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 탄핵 절차를 통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돼 자행된 반헌법적 행위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동료판사 탄핵 촉구" 결의한 법관대표회의
그러나 반대 의견도 43표로 쟁쟁했다. 반대 측 대표들은 “탄핵 소추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자 국회 권한이기 때문에 사법부가 특정 의견을 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우려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설령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법원이 국회에 대해 탄핵 소추 개시를 촉구하는 것은 삼권분립을 해칠 수 있다는 논리다. 법관대표회의 관계자는 “반대 측 논리도 설득력 있어 오후 1시부터 약 세 시간 동안 격론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국회 탄핵 소추 힘 실릴 듯

판사 119명으로 구성된 법관대표회의는 대법원장 자문기구다. 이날 의결 사항은 20일 전자문서 형태로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공식 전달될 예정이다. 회의가 끝난 직후 사법연수원 구내식당에서 열린 김 대법원장과의 만찬 자리에는 약 80명이 참석했다.

국회 탄핵소추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릴 전망이다. 현재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탄핵 대상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권순일·이규진·이민걸·김민수·박상언·정다주 판사 등이다. 현직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 동의로 발의, 재적의원 과반이 찬성하면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판 절차에 들어간다.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이 찬성하면 파면이 최종 결정된다. 이날 회의에선 특정 법관을 탄핵 대상으로 거론하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신연수/고윤상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