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중심의 수출 제조업 체제가 얼마나 유지되겠나. 제조업 비중을 줄이고 서비스, 레저, 문화산업을 더 육성해 내수를 키워야 한다.”(최정표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수출 제조업의 한계가 드러났다. 서비스업·내수·중기 중심으로 고용을 창출해야 한다.”(이용섭 전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정부 부처나 국책연구기관 사이에 ‘제조업 육성’은 일종의 금기어처럼 취급돼왔다. 제조업은 한때 한국을 떠받치는 효자산업으로 꼽혔지만 지금은 일자리 창출에 소극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이것도 모자라 양극화의 주범으로 낙인찍혔다. 정부 내에서 간혹 ‘제조업 지원’이나 ‘규제 개혁’ 목소리가 나오면 대기업 편들기라는 비난에 묻히곤 했다. 그 사이 경쟁국들은 국가 차원의 전략을 경쟁적으로 도입해 제조업 키우기에 나서면서 한국과의 격차를 확대하고 있다.
양극화 주범으로 내몰리는 한국 제조업…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중국 700페이지 vs 한국 5페이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011년 평균 15.9%에서 2016년 17.0%로 증가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31.36%에서 29.33%로 감소했다. OECD 회원국 중 노키아 쇼크로 제조업이 붕괴한 핀란드를 제외하면 가장 큰 감소 폭이다.

중국만 해도 2025년까지 세계 최고의 제조 강국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2015년엔 700페이지가 넘는 ‘중국제조 2025 중점영역 기술혁신’ 그린북을 내놨다. 여기엔 로봇, 인터넷 등 10대 중점 영역과 23개 우선발전 방향이 담겨 있다. 중국은 이마저도 매년 새롭게 보완하고 있다. 특히 2016년 미국이 중국을 제치고 제조업 1위에 올라설 것이라는 딜로이트의 보고서에 발칵 뒤집힌 중국은 주요 싱크탱크의 전문가를 불러모아 1년마다 업그레이드된 로드맵을 내놓고 있다.

반면 한국은 작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범정부 차원의 제조업 육성책을 한 번도 내놓지 않았다. 혁신성장 일환으로 ‘제조업 부흥전략’을 작년 말 내놓겠다고 했지만 공언에 불과했다. 올초 산업통상자원부가 5페이지짜리 ‘지능형 로봇산업 발전전략’ 자료를 내놓은 게 전부다. 컨트롤타워조차 없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너무 안이하다. 해외 선진국이 제조업 규제를 대폭 풀고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는데 한국 기업들이 무슨 수로 경쟁하느냐”고 했다.

‘누가 규제 많이 푸나’ 글로벌 경쟁

중국과 미국의 제조업 부흥전략이 본격화되자 독일과 일본 등 제조업 강국은 앞다퉈 규제 완화에 나섰다. 일본 아베 신조 정부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전국 단위의 규제 개혁을 시행했다. 반면 한국은 ‘규제 혁파’ 구호만 외칠 뿐 여전히 모든 사업 단계에서 규제가 촘촘하게 얽혀 있다.

제조 선진국은 제조업 파견 허용 등 고용 유연성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은 제조업 파견을 허용하지 않다 보니 기업들이 도급 계약에 의존하고 있다. 사내 하도급과 불법 파견의 경계가 모호해 업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일본은 2004년 제조업 파견을 허용한 뒤 파견 근로자 수가 226만 명에서 2년 만에 320만 명으로 100만 명가량 늘었다. 독일도 파견 기간 폐지 등 노동 규제를 완화한 이후 파견근로자 수가 2003년 33만 명에서 2012년 90만 명으로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제조업 편견부터 걷어내야

전문가들은 제조업을 육성하려면 제조업에 대한 정부의 편견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재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제조업 규제 비용을 10% 줄이면 GDP가 4.8% 증가하고 실업률도 0.14%포인트 감소한다”며 “서비스업 부문의 고용 창출 효과가 크다고들 하는데 대부분 생산성이 낮은 일자리기 때문에 제조업 일자리와 동일하게 비교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5년간의 고용 창출 성적표를 보면 제조업이 일자리 창출 1등 공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5년간(2011~2016년) 종업원 300인 이상의 대기업을 분석한 결과 종업원 수 증가 상위 30개 기업의 전체 종업원 수는 30만699명에서 41만6334명으로 11만5635명(38.5%) 늘었는데 이 중 제조업이 3만2609명(28.2%)으로 가장 많았다. 도매 및 소매업(3만2022명·27.7%), 숙박 및 음식점업(1만5723명·13.6%) 등 서비스업은 제조업보다 일자리 창출이 적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

한국인더스트리4.0협회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