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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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37회째를 맞은 ‘스승의날’ 폐지론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다름 아닌 교사들이 주장했다. “스승의날이 1년 중 가장 불편한 날”이라는 자조가 이어졌다. ‘카네이션 한 송이’마저 금지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여파도 만만찮았다.

왜 교사들 스스로 총대를 메고 나섰을까. 자긍심에 상처를 입은 탓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임모 교사는 “김영란법 시행 이전부터 촌지 근절에 힘써왔다. 아예 스승의 날 행사를 열지 않거나 쉬는 학교도 많다”고 했다. 그럼에도 스승의날만 되면 촌지를 받아 챙기는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되곤 한다는 것이다. 교사는 교사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찜찜함이 남는 날이 되었다. 김영란법 시행 후에는 한층 사회적 관심이 집중됐다.

이처럼 서로 불편한 날이 되느니 차라리 스승의날을 없애 의혹을 원천 차단하자는 얘기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논평을 내고 “의미 없는 스승의날 폐지를 검토할 때가 됐다. 대신 ‘교육의날’ 또는 ‘교사의날’을 정하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1986년 전두환 정권 당시 교사 800여명이 ‘교육민주화선언’을 발표한 5월10일을 가칭 ‘교육의날’ 후보 날짜로 제시했다.

교사노조연맹 역시 유사한 제안을 내놓았다. 스승의날이 ‘법정기념일’인 탓에 마지못해 행사를 치르는 날로 전락한 만큼 민간기념일로 전환하고 대신 ‘교사의날’을 법정기념일로 하자는 내용. 이어 “교사들은 학부모나 제자가 부담을 지는 스승의날보다 교사 지위와 전문성 향상을 위해 제정하는 ‘교사의날’이 더 필요하고 반가운 날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달 정성식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이 올린 스승의날 폐지 청와대 국민청원도 눈길을 끌었다. 정 회장 외에도 자신을 현직 교사라고 밝힌 상당수가 비슷한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마치 교사가 스승의날 선물을 바라는 사람처럼 비치는 게 자존심 상한다는 의견이 잇따랐다.

인천 지역 중학교에 근무하는 박모 교사는 “스승의날은 교사에게도 고충이었다. 학부모는 음료수 한 박스라도 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겠지만 교사 역시 성의를 거절 못해 받고선 혼자 다 먹을 수도 없어 음료수 돌리는 게 일이었다”면서 차라리 김영란법 이후가 편하다고 귀띔했다.
<표>최근 5년간 유형별 교권침해 현황 / 출처=곽상도 의원 제공
<표>최근 5년간 유형별 교권침해 현황 / 출처=곽상도 의원 제공
교권이 추락한 상황에서 무늬만 ‘스승의날’ 행사를 치르는 세태도 지적된다. 교사들은 교권 회복이라는 본질에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실제로 전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곽상도 의원(자유한국당)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교권침해 현황’에 따르면 2013~2017년 5년간 총 1만8211건의 교권침해가 발생했다. 특히 5년새 교사 폭행(63%)과 성희롱(127%),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72%) 등 수위가 높고 현장교원 애로가 큰 교권침해 건수는 껑충 뛰었다.

재선에 도전하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예비후보는 이런 분위기를 감안해 교권 보호방안을 강구하기로 약속했다. 동시에 스승의날을 가칭 ‘학교화합의날’ 또는 ‘학교가족의날’로 확대·발전시키는 안도 언급했다. 교사·학생·학부모가 부담 없이 만나 소통하는 날로 바꾸자는 아이디어다.

반면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데 초점을 맞췄다. 스승의날 본래 의미를 구현하고 반성의 계기로 삼자는 취지에서 이날 스승의날 발원지 격인 충남 논산 강경고에서 기념식을 개최했다.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무조건 폐지만이 능사는 아니다. 전인교육 의미까지 담은 ‘스승’이 아닌 전문가로서 ‘교사’의 날을 제정하자는 주장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면서 “스승의날 폐지 움직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이면에 숨은 교사들의 분노와 자조를 정확하게 읽어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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