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 옵션쇼크 사태’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 소멸시효 논란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도이치 측의 불법행위가 확인됐지만 민법상 손해배상을 두고 1심과 2심이 정반대 결론을 내서다. 대법원 판결에서 어떤 결론이 나느냐에 따라 다른 금융 관련 소송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소멸시효 완성 여부 판단에 갈린 1·2심

서울고등법원 민사16부(부장판사 김시철)는 개인투자자 강모씨 등 11명이 도이치은행과 도이치증권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1심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14일 밝혔다.

도이치증권은 2010년 11월11일 장 마감 10분 전에 2조4400억원어치 주식을 대량 처분했다. 이로 인해 주가가 폭락하면서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었다. 도이치 측은 사전에 매입한 풋옵션으로 약 448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겼다.

2016년 1월 서울중앙지법 형사 27부(부장판사 심규홍)는 한국도이치증권 박모 상무에게 징역 5년, 법인에 벌금 15억원 등을 선고했다.

법원의 유죄 판결을 근거로 강씨 등 개인투자자들은 배상액 6억1500여만원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소멸시효 ?문에 1심과 2심 판결이 갈렸다. 민법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은 피해자가 손해가 발생한 사실이나 가해자를 인지했을 경우 3년으로 제한된다.

1심 재판부는 소멸시효가 아직 진행 중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전문투자가가 아닌 원고들은 관련 민·형사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시세조종 행위의 정확한 사실관계 등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며 첫 민사판결이 나온 2015년 11월 혹은 형사 판결이 나온 2016년 1월부터 소멸시효를 계산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오락가락’ 소멸시효에 투자자들 피해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봤다. “원고들이 늦어도 피고(도이치증권)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영업정지 처분이 확정된 2011년 5월께는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인식했다고 봐야 한다”는 판단이다. 당시 금융감독원과 검찰의 수사 결과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된 정황으로 미뤄 도이치의 주식 대량 매도가 위법한 것을 인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그때부터 소멸시효를 계산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판결이 갈린 이유는 불법행위로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피해자가 현실적·구체적으로 인식한 시점이 어느 때인가에 대한 해석의 여지가 많아서다. 대법원 판례도 통일돼 있지 않아 사안과 판사 재량에 따라 달라지는 실정이다.

입증이 복잡한 금융범죄 특성상 ‘오락가락’ 소멸시효 때문에 애먼 피해자들이 발생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반 소비자로서는 확정 판결이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선뜻 시간과 비용을 들여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부담이라는 지적이다. 임진성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도이치 사건만 봐도 2011년에 기소돼 아직까지도 항소심 재판에서 혐의가 다퉈지고 있다”며 “형사판결 확정일 등 소멸시효의 명확한 기산점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소멸시효

일정 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경우 그 권리가 소멸되는 것을 말한다. 민법 제766조에 따르면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불법행위가 발생한 날로부터 10년 혹은 피해자가 손해 및 가해자를 인식한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소멸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