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정시 확대 않은 서울대, 어떤 '신호'일까?
서울대가 장고 끝에 현행 유지를 택했다. 현재 고2가 치르는 2020학년도 대입 얘기다. 서울대는 수시 78.5%, 정시 21.5% 선발을 골자로 한 ‘2020학년도 입학전형 주요사항’을 지난 1일 발표했다. 올해 신입생(2018학년도)과 동일한 비율로 3년간 변화를 주지 않기로 했다.

이례적 행보다. 앞서 주요 사립대는 일제히 정시 비중을 끌어올렸다. 박춘란 교육부 차관의 ‘전화 효과’였다. 거의 완성 단계의 입학전형안을 만들어놓은 대학들은 정부 의중에 발맞춰 부랴부랴 이를 수정했다. 고려대를 제외하면 대부분 정시 비율을 30%대로 높였다.

서울대는 왜 홀로 다른 길을 택한 것일까. 학교 측은 입시 안정성을 첫 손에 꼽았다. “입학전형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입학전형과 평가방법의 기본틀을 유지한다”는 게 서울대의 공식 입장.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서울대는 정부 방침의 영향을 사립대보다 더 받는 국립대학법인이다. 게다가 박 차관이 직접 접촉해 정시 확대를 당부한 5개 대학 중 하나다. ‘전화’를 받지 않은 사립대들까지 정시 확대 요청에 따라가는 마당에 서울대가 움직이지 않은 건 의외라는 반응이 나온다.

그 이유는 내부 의견수렴, 즉 학과들 판단으로 볼 수 있다. 대학의 입학 부서는 외부에서 바라보듯 힘이 세지는 않다. 각 학과가 수시·정시 선발인원 등에 대한 의견을 내면 가급적 반영하고 전체적으로 조정하는 정도의 역할을 한다.

실제로 서울대 입학본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세부 모집단위별 선발인원을 보면 학과마다 수시·정시 비율이 천차만별이다. 인문대학은 학과별로 수시 일반전형만 진행하는 대신 지역균형선발(지균)전형과 정시는 광역선발로 뽑는다. 사범대의 경우 단과대 내에서도 학과별 차이가 상당한 편이다. 독어·불어·윤리교육과는 정시 선발을 하지 않고 지리교육과는 수시 일반전형을 뽑지 않는 반면 교육학과는 수시 일반전형으로만 선발한다. 또 인류학과 언론정보학과 통계학과 지구환경과학부 에너지자원공학과 수의예과 자유전공학부 등도 정시 선발이 없다. 음대와 미대는 단과대 소속 전체 학과들이 수시로만 뽑는다.

서울대 정문. / 출처=한경 DB
서울대 정문. / 출처=한경 DB
그러면 이번 발표는 향후 서울대 입학정책에 대한 어떤 ‘신호’로 풀이해야 하나. 정시 확대를 최소화하고 앞으로도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많이 뽑겠다는 뜻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2020학년도에 한정된 결정으로 보는 게 합리적 해석이다.

저간의 사정을 되짚어보자. 2020학년도 입시의 경우 갑자기 방향을 틀기 어려웠다. 이미 학과들 의견을 수렴해 전체 틀을 짜놓은 터였다. 바꿀 수 있는 여지도 거의 없었다. 주요 사립대는 주로 특기자·논술전형을 줄이고 정시를 늘리는 식으로 대응했으나 서울대는 이마저도 불가능했다. 수시를 모두 학종으로 뽑아 특기자·논술전형 선발인원이 전무한 탓이다. 물론 차관의 전화 한 통으로 급박하게 정시 확대를 비공식 요청해온 절차적 결함도 문제가 됐다.

앞으로는 180도 달라진다. 정시 확대를 돌발 변수가 아닌 상수로 놓고 입학전형을 짜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올 8월 정해질 2022학년도 대입 개편의 영향도 받을 수밖에 없다. 공론화를 거쳐 학종과 정시의 ‘적정 비율’을 도출하면 전체 대입에 파급력이 큰 국립 서울대가 이를 외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2021학년도 입시는 2022학년도의 큰 변화를 대비하는 ‘충격 완화’ 성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가령 국가교육회의가 2022학년도 학종과 정시의 적정 비율을 5:5로 권고한다고 하자. 현재 약 8:2 비율인 서울대는 급격한 변화로 인한 혼선을 막기 위해서라도 2021학년도에 이러한 흐름을 반영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더해 서울대는 10일 총장선거를 치른다. 총장이 바뀌면 입학본부장을 비롯한 보직교수들도 교체하는 게 관례다. 2021학년도 서울대 입시는 신임 총장과 새 입학본부장 체제에서 결정하게 된다. 여러모로 학종에 방점을 찍은 지금까지의 서울대 입시정책 기조에 변화를 줄 개연성이 커진다.

주요 대학의 학종 확대 추세는 학교 내부 판단도 있었지만 정부의 신호 때문이기도 했다. 교육부가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을 통해 학종을 장려해온 게 대표적이다. 그간의 초록불이 노란불로 바뀌면서 일단 제동이 걸렸다. 확실하게 빨간불이 켜지면 대학도 바뀔 수밖에 없다.

국민 여론, 학내 환경, 정부 방침의 변화까지.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서울대가 마냥 ‘마이웨이’를 고수하기 어려운 이유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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