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희롱 사건 피해자에게 불리한 인사 조치를 한 회사에 배상 책임을 묻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과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짐에 따라 법원 판결도 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성희롱 피해자 대기발령은 회사의 '2차 가해'
◆피해자에 대한 기업의 ‘2차 가해’ 인정

서울고등법원 민사12부(부장판사 임성근)는 20일 르노삼성자동차 직원 박모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파기환송심에서 “회사는 박씨에게 4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박씨는 2012년 4월부터 1년여 동안 직장 상사인 최모씨로부터 지속적인 성희롱에 시달렸다. 최씨는 박씨의 손을 만지거나 ‘온몸에 오일을 발라 전신마시지를 해주겠다’고 말하는 등의 가해 행위를 저질렀다. 참다못한 박씨는 2013년 6월 최씨와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소송이 시작되자 사측은 오히려 피해자인 박씨를 징계했다. 재판에 필요한 증언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동료 직원을 협박했다는 이유로 견책 처분을 내렸다. 이후 원래 맡던 전문 업무 대신 비전문 업무에 배치하고 뒤이어 직무를 정지시키고 대기발령했다.

2014년 1심 재판부는 가해 상사의 손해배상 책임만 인정했다. 이듬해 2심은 가해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사측 책임을 인정했지만, 부당 인사 책임은 물을 수 없다고 봤다. 청구한 위자료 5000만원 중 1000만원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2017년 12월 회사 책임이 추가로 인정될 여지가 있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부당 인사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금 4000만원을 지급할 것을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는 원고가 신속하고 적절한 구제조치를 요청했는데도 오히려 부당한 징계처분을 내려 정신적 피해에 노출되는 2차 피해를 봤다”고 설명했다.

◆“직장 내 성희롱 가장 적극적 판결”

이번 판결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본 근로자에게 불리한 조치를 해선 안 된다는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2항을 법원이 적극적으로 해석·적용한 최초의 판례로 평가된다. 진형혜 한국여성변호사회 사무총장은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위자료를 수천만원까지 무는 경우는 드물다”며 “피해자 보호에 소홀한 것을 넘어서 별도의 가해행위까지 저지른 기업에 엄중한 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중 문제를 제기했다가 부당한 징계 등 불이익 조치를 경험한 여성 근로자 비중은 전체 내담자 중 2015년 34%, 2016년 42.5%, 2017년 63.2%로 높아지고 있다. 피해 여성 10명 중 8명은 6개월 내에 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가희 한국여성민우회 노동팀 활동가는 “규모가 작은 회사일수록 바로 해고로 이어지는 등 2차 가해가 만연해 그동안 피해자들이 적극적인 신고를 꺼렸다”고 지적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