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3월26일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한 것은 1980년 전두환 대통령에 이어 38년 만이다. 이번 개헌 논의는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고치자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개헌안은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는 방안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토지공개념 등 반(反)시장주의적 요소도 포함돼 논란이 되고 있다.

대통령의 4대 권력기관장 인사권 그대로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이 지난달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권력구조를 포함한 대통령 발의 개헌안 3차 발표를 하고 있다.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이 지난달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권력구조를 포함한 대통령 발의 개헌안 3차 발표를 하고 있다.
대통령 개헌안에는 대통령을 두 번 연속 할 수 있는 대통령 4년 연임제가 포함됐다. 4년 연임제는 5년 단임제와 비교했을 때 국정 운영의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고, 대통령의 실책에 대해 선거를 통해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이 상대적으로 늦어지는 장점도 있다.

대통령의 권한 분산을 위해 감사원을 독립적인 헌법기구로 만들고 대통령의 헌법재판소장 인사권을 폐지하며, 책임총리제를 구현하는 방안 등이 제시됐다. 하지만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국가정보원장 등 주요 권력기관장에 대한 대통령의 임면권(임명권과 해임권)은 그대로 남겨뒀다. 주요 권력기관의 독립성을 위해 인선 과정에서 국회 동의를 얻는 등 대통령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현재는 이들 권력기관장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않아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수 있다.

그밖에 △선거권 18세로 하향 △지방분권 강화 △헌법 전문(前文)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부마항쟁 등 민주화운동 정신 계승 등이 포함된 것도 특징이다.

논란이 되는 내용도 다수

[뉴스 인 포커스] 대통령 임기 현행 5년 단임제를 4년 연임으로
논란이 되는 내용도 대통령 개헌안에 다수 반영됐다. 우선 경제 분야에서는 토지의 공공성을 위해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못 박은 것이다. 현행 헌법은 국토 보호 등을 위해 국가가 토지 재산을 제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토지 재산 침해를 제한적으로만 인정해왔다. 헌법의 기본 이념인 자본주의 경제질서와 충돌하고 헌법이 보장한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도입하면 부동산을 팔지 않아도 부동산값이 오를 때 세금을 내야 하는 ‘토지초과이득세법’ 같은 법을 손쉽게 추진할 수 있다. 지금은 실제 금전적 이익을 얻지 않았는데도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라는 의견이 많지만 토지공개념이 헌법에 들어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경제민주화 조항에는 ‘상생’이란 말이 포함됐다. 대기업 규제를 강화하려는 뜻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공무원의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보장도 개헌안에 명시됐다. 공무원에게 파업 권한까지 보장하면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된 현행 헌법 제7조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반영도 논란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남녀 차별이나 정규직·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동일가치의 노동에 같은 임금을 줘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에 대해 노동의 질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 통과는 어려울 듯

[뉴스 인 포커스] 대통령 임기 현행 5년 단임제를 4년 연임으로
대통령 개헌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국민투표에서 가결되면 헌정 역사상 31년 만에 개헌이 이뤄진다.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기 위해서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국회 재적의원 수는 293명으로, 최소 196명이 찬성해야 한다. 대통령 개헌안에 반대 의사를 밝힌 자유한국당의 의석수만 116석이다. 자유한국당은 문 대통령의 개헌안에 부정적이다. 현재로선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한 것은 국회에 개헌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문 대통령은 헌법 개정안 발의 입장문을 내면서 “제가 발의한 헌법 개정안은 개헌이 완성되는 과정에 불과하다”며 “모든 것을 합의할 수 없다면, 합의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개정해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에서는 ‘선거용’이라며 반발했다. 문 대통령은 오는 6월13일 지방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를 요구하는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결국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후에야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여야 3당 교섭단체는 국회 차원의 개헌안 마련을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야당이 지방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를 하는 데 반대하고 있어 개헌 시기는 더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

조미현 한국경제신문 정치부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