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현 숭실대 교수는 대통령 개헌안에 대해 "대통령 권력분산이 미흡한 면이 있다"고 짚었다. / 사진=최혁 기자
고문현 숭실대 교수는 대통령 개헌안에 대해 "대통령 권력분산이 미흡한 면이 있다"고 짚었다. / 사진=최혁 기자
청와대가 사흘째 대통령 발의 개헌안을 발표한 22일, 한국헌법학회도 자체 연구한 개헌안을 공개했다. 대통령 개헌안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국무총리에 ‘내치’를 맡겨 권한을 대폭 강화한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개헌 논의를 촉발한 만큼 분권이 필수라고 봤다. 단 야당이 요구하는 ‘국회 선출 또는 추천’이 아닌 ‘대통령 임명’ 총리를 제안했다.

헌법학회장인 고문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사진)를 이날 학내 진리관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국회에 대한 불신이나 여야 구도에 매몰돼 분권형 대통령제를 외면하지 말자. 역지사지의 자세로 백년대계를 세워야 할 것”이라며 “대통령 권한을 더 내려놔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 대통령 개헌안을 총평한다면.

“헌법적 가치가 있고 시대정신에 걸맞은 내용을 여럿 담았다. ‘국민’을 ‘사람’으로 바꾸고 천부인권의 보편성을 반영해 기본권을 신장한 점 등이 돋보인다. 국민소환제·국민발안제 역시 직접민주주의 확대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개헌안을 사흘간 나눠 발표한 것도 좋았다. 방대한 분량을 한꺼번에 발표하면 국민들이 살펴보고 이해하기도 벅차다. 국민과 소통하며 민의를 피드백 받으려는 진지한 노력이라 평가한다. 총론에는 찬성이다.”

- 각론은?

“애매하다. 다른 것보다도 대통령 권한 분산은 거의 없었다. 애초에 개헌 논의가 나온 배경이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반성 아니었나. 그런 점에서 분권 노력이 잘 안 보인다.”

-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했다”고 했는데. 대통령의 국가원수 지위를 삭제하고, 총리의 경우 ‘대통령의 명을 받아’라는 문구를 없앴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그 정도로 총리가 독자적 역할을 할 수 있겠나? 실질적 권한을 줘야 ‘대독 총리’ 오명을 벗고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도 줄일 수 있다. 학회 개헌안은 총리가 외교·통일·국방을 제외한 행정부를 이끌도록 했다. 내·외치 구분이 흐려지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외치 대통령, 내치 총리의 투톱 체제가 핵심이다.”

- ‘분권형 대통령제’를 제시한 건데 변형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국회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큰 상황에서 그게 가능하겠나.

“더불어민주당도 야당 시절 분권형 대통령제 추진을 구상한 것으로 안다. 여당이 됐다고 해서 정략적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또 국회에 대한 불신이 있다 해도 좀 더 길게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목도해왔지 않느냐.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있고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이 구속을 목전에 두고 있다. 시스템적으로 대통령의 권한 집중을 막자는 거다.”

- 현재로서는 국회 부결 가능성이 커 보인다. (대통령 개헌안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은 개헌저지선인 3분의 1 이상에 해당하는 116석을 보유하고 있다.)

“야당, 특히 한국당이 보이콧하겠지. 국회 선출 또는 추천 총리를 주장하고 있으니까. 어쨌든 구도상 제왕적 권한을 실질적으로 줄이는 노력 없이 대통령 개헌안 통과는 불가능에 가깝다.”

- 돌파구가 있을까?

“학회 개헌안은 책임 총리제를 구현하되, 총리는 국회가 선출·추천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이 국회 동의를 얻어 임명하는 것으로 했다. 총리 권한을 늘리는 한편 대통령의 임명권은 유지하는 절충안이다. 그렇게 되면 청와대가 우려하는 것처럼 대통령과 총리 간의 상시적 긴장관계, 이중권력 상태로 국정 난맥상을 빚는 일은 없지 않겠느냐.”

- 그렇다 해도 투톱 체제, 오히려 실권은 총리가 더 셀 수도 있는 시스템을 국민이 납득할까? 대통령은 ‘내가 뽑은 사람’이다. 직접민주주의 절차를 통해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정당성이 있다. 반면 총리는 선출된 권력이 아니잖나.

“일리 있는 지적이다. 단 야당 주장대로 국회가 총리를 선출·추천하면 대통령과 총리 간에 충돌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 대통령도, 국회도 선출된 권력이라 파행을 빚을 여지가 많다. 그것보다는 대통령 임명이 낫다고 본다. 잘 정착되면 선거와 별개로 훌륭한 정치적 식견을 가진 인물이 총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국회 동의를 얻어 임명해야 하니 정당성도 확보할 수 있고.”
2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통령 개헌안을 발표하는 조국 민정수석(가운데). / 사진=연합뉴스
2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통령 개헌안을 발표하는 조국 민정수석(가운데). / 사진=연합뉴스
- 전제조건은 결국 대통령 권한을 내려놓는 것?

“현실적으로 그 수밖에 없지 않나. 물론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문 대통령 본인밖에 없다.”

- 그렇게까지 해서 지금 통과시켜야 할 당위가 있나? 정치공학적 계산이지만, 2년 뒤 총선에서 여당이 압도해 개헌저지선을 돌파하는 시나리오도 있다. 그때도 문 대통령의 임기다.

“2년 뒤 상황을 어떻게 보증하나. 1987년 이후 30년 넘게 흘렀다. 이번이 개헌의 적기다. 실기(失期)하면 안 된다. 내용상으로도 분권이 들어가야 한다. 시기와 내용에서 모두 바로 지금 대통령의 ‘결단’이 요구된다.”

- 결단하면 국회가 받나.

“대통령이 권한을 내려놓으면서까지 진정성을 보이는데 안 받을 명분이 있나. 야당도 피해갈 수 없을 거다. 극적 타협이 가능한 시나리오다.”

- 임기는 4년 중임제를 제안했는데. (대통령 개헌안의 4년 연임제는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선에서 낙선하면 재출마가 불가능한 반면 중임제는 가능하다.)

“연임제는 책임정치 구현 의미가 있다. 학회가 좀 더 나아가 중임제를 제안한 것은 재출마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공무담임권까지 제한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집권 경험을 토대로 다시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는 열어놓는 게 좋지 않겠나.”

조국 수석은 3차 발표한 개헌안 가운데 정부 형태와 권력구조 부분을 거론하며 “대통령의 권한을 국회에 주는 것에 국민들이 동의하는가”라고 짚었다. “그렇지 않다”는 답변을 내포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국회 구성이라는 ‘현상’과 견제·균형 원리에 입각한 헌법상 권한 배분이라는 ‘제도’는 동일한 층위가 아니다. 국회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감안해도 현행 대통령중심제를 그대로 가져가는 방식의 개헌은 곤란하다는 뜻이다. 학계뿐 아니라 시민사회의 중론에 속한다. 물론 대통령중심제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등의 정부 형태 논쟁에 ‘정답’은 없다. 다만 개헌 정국에서 현 제도와 구조를 보다 민주화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고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결단해야 제왕적 대통령제를 깨는 개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사진=최혁 기자
고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결단해야 제왕적 대통령제를 깨는 개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사진=최혁 기자
- 다른 부분도 들여다보자. 정치기본권 확대는 어떻게 판단하나.

“시각이 갈리지만 큰 틀에서 잘했다고 생각한다. 교원이나 공무원도 사람이다. 정치적 의사 표현의 권리가 있다. 그간 정치적 중립 의무를 들어 막은 것은 과잉규제였다. 기본권인 만큼 헌법에선 허용하고 세부 매뉴얼을 하위 법령에서 잘 정비해 운영의 묘를 살리면 된다.”

- 토지공개념도 핫이슈다.

“학회 개헌안에는 토지공개념이 들어가지 않았다. 총론은 찬성인데 각론으로 들어가면 어려운 면이 있다. 사유재산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꼭 토지공개념을 넣지 않더라도 현행 헌법을 사회정의 측면에서 해석하면 적절히 구현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 대통령안은 토지공개념 명문화로 법적 근거를 확실히 하자는 차원 아니냐.

“의견이 엇갈려 학회안에 못 넣었다는 얘기다. 개인적으로는 찬성한다. 예컨대 10~20배의 부당이득이 발생한다면 일정 비율 사회에 환원하는 방향이 공감대를 얻지 않을까? 방법적으로는 기부 형태에 세제 혜택을 줘 조세저항을 줄인다든지… 학회안에 토지공개념이 들어갔다면 금상첨화였을 것 같다.”

- 지방분권을 명시했는데.

“의미있는 변화다. 특히 지방의 재정권 강화 방향은 바람직하다. 재정자립 없이 매번 중앙에서 교부금 내려받아 뭘 할 수 있겠나. 학회안에는 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를 지원하는 지방재정 조정제도를 포함시켰다. 지방정부간 빈익빈 부익부를 방지하고 격차를 줄이자는 취지다. 독일이 그렇게 하고 있다.”

- 헌법 전문에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부마항쟁, 6·10 항쟁 등이 들어간 것도 논란이 있다. 그 정신은 계승하더라도 구체적 사건을 어디까지 넣어야 할지?

“상징적 사건을 넣는 것에는 동의한다. 단 ‘헌법적 가치가 있는 사건인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할 거다. 얼마 전 세미나에서 최장집 교수가 5·18이 중요한 사건이지만 헌법에 넣는 건 반대라고 하더라. 결과적으로 학회안에는 5·18과 6·10이 들어가고 부마항쟁은 빠졌다. 저도 영남 출신이지만 부마항쟁까지 들어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지역안배 느낌도 든다. 정치적 판단보다 객관성이 헌법의 잣대가 돼야 한다.”

- 정부는 6·13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하자는 입장이다. 2022년부터 대선과 지방선거의 동시 실시도 부칙에 삽입됐다.

“가장 큰 이유는 1200억원 비용절감 때문이다. 물론 아끼면 좋지만 보다 중요한 건 합의 도출 여부다. 동시투표의 효율성에 너무 얽매이기보다는 백년대계 설계 차원에서 봐야 하지 않겠나. (대선·지방선거의) 동시선거가 어떤 효과를 낼 것인지도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

대통령 개헌안이 26일 발의되면 공은 국회로 넘어간다. 개헌안은 20일 이상 공고 후 60일 이내인 5월25일까지 국회 표결을 하게 된다. 국회가 독자 개헌안을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은 한 달 남짓.

고 교수는 개헌이 탄력을 받으려면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되풀이 강조했다. 그는 “총리에 힘을 싣는 대신 대통령이 총리 임명권을 갖는 학회안이, 이견이 큰 정부와 국회를 중재할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향후 논의가 지지부진할 경우 헌법학자들은 다시 기자회견을 열어 분권형 개헌을 촉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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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