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박융수 예비후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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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융수(사진). 교육공무원 출신. 박근혜 정권 교육부에서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국고지원 확보,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 ‘찍히다시피’ 인천시 부교육감으로 인사조치. 약 1년간 인천교육감 권한대행. 1965년 충남 서천 출생. 고위공무원 정년퇴임까지 8년 남음. 인천에 연고 없음. 그런데도 인천 학부모들이 교육감 출마 요청. 지역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공동1위.

6·13 지방선거 인천교육감에 출사표를 던진 박융수 예비후보의 스토리는 독특하다. 일반적 손익 계산으로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3무(無)’를 공약했다. 출판기념회 열지 않기, 후원금·기부금 받지 않기, 선거 펀딩(모금) 하지 않기. 여기에 ‘3무’를 추가했다. 선거 유세용 트럭·스피커·율동운동원도 없앤다. “진보와 보수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갈수록 태산이다. 진영도 조직도 없이 손발 묶고 어떻게 선거를 치르겠다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 거두절미하고 묻겠습니다. 왜 출마하는 겁니까.

“지난해 말부터 학부모·시민 분들이 제게 출마를 요구해왔어요. ‘시민의 명령’이라면 생각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시민의 명령을 확인하는 구체적인 형태로, 지역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 제가 1위를 하면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죠. 그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 시민들이 출마를 요구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작년 12월의 일이 직접적 계기가 됐을 겁니다. 유정복 인천시장이 고교 무상급식을 하겠다고 했어요. 좋습니다, 반대할 이유가 없지요, 예산만 충분하다면요. 교육감 권한대행으로서 예산 대책 없는 고교 무상급식은 무책임한 행정이라 판단했습니다. 정해진 예산에서 무상급식을 교육청 돈으로 하면 학교 시설, 인건비 같은 여타 교육예산이 줄 수밖에 없잖아요. 시청과 시의회는 제 의견에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예산을 깎아 고교 무상급식 예산으로 돌리려 했죠. 안 되겠다 싶더군요. 저간의 사정을 사실 그대로 직접 시민들에 설명하는 통로가 필요했습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그때 시작했죠.”

- 결론이 어떻게 났나요.

“공론화되면서 유 시장과 만나 담판을 했습니다. 시가 많이 양보했어요. 중학교 이하 무상급식 예산은 교육청 60%와 지자체 40%, 고교는 교육청 40%와 지자체 60% 부담으로 정했습니다. 이를 통해 지자체에서 교육청으로 연간 426억원씩 신규 예산이 들어오게 됐죠. 그러면서 제게 출마를 요청해오기 시작했으니 그 과정을 시민들이 인상 깊게 지켜본 것 같습니다.”

- 그래도 출마를 결심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요.

“교육감 선거는 지방선거와 달라요. 유권자들이 후보가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당 선거도 아니지요. 쉽지 않은 구도입니다. 누구보다 제가 잘 알죠. 교육부에서 담당 국장(지방교육지원국장)을 했으니까요. 제가 고위공무원으로 정년까지 남은 기간이 8년 정도 됩니다. 이걸 포기하고 출마하는 건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도 리스크(위험)가 큰 선택인 거죠. 저를 찾아오는 학부모 분들께도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 사진=박융수 예비후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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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학부모 분들은 그렇지 않다, 당신에 대한 엄마들의 지지가 높다, 꼭 나와달라 하시더군요. 그래서 일종의 절충안을 내놓은 겁니다. 일반 시민들의 지지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여론조사밖에 없지 않느냐, 여론조사 1위가 나오면 출마 검토하겠다, 이렇게요. 공직 사퇴시한(15일) 직전까지 여론조사가 진행되지 않아 없던 일로 가닥을 잡고 있었는데 막판에 실시한 지역방송사 여론조사에서 공동1위를 했어요. 학부모 수십분이 출마하라면서 제 집무실에 몰려오기도 했죠(웃음). 많이 고민했지만 공직자로서 약속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출마하기로 결심했지요.”

- 인천에는 연고가 없잖아요?

“학연·혈연·지연 전혀 없어요. 굳이 따지자면 29년 공직생활 가운데 인천 부교육감과 교육감 권한대행으로 보낸 3년2개월여가 가장 길다는 정도?”

- 그게 도리어 강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인천은 전임(이청연)과 전전임(나근형) 교육감이 연달아 비리에 연루돼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여러 차례 ‘3무 선거’를 하겠다고 했어요. 저는 최근까지 현직이었기 때문에 출판기념회든 후원금·기부금이든 펀딩이든 유리해요. 예를 들어 출판기념회 한다고 칩시다. 인천 지역 교직원이 3만명 가까이 되거든요. 어림잡아 1만명이 와서 평균 5만원씩 봉투에 넣으면 5억원이에요. 당연히 재정적 도움이 되죠. 그럼에도 하지 않겠다고 한 건, 교육은 ‘정성’이고 ‘실천’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육감의 자격을 갖추려면 선거 과정도 깨끗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시작해야 바뀔 것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저의 시도로 2022년 다음 선거에서 3무가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다면 해볼 만한 시도 아닐까요?”

- 의미 있는 실험으로 보입니다.

“전국적으로 3무 교육감 선거를 하면 1000억원 정도 비용을 아낄 수 있어요. 그 돈을 교육예산으로 쓸 수 있는 거죠. 제가 이번에 몇억원 사재를 투입해 3무 선거를 치르는 걸 계기로 4년마다 선거에서 1000억원씩 확보한다면 얼마나 의미 있겠습니까.”

- 그렇긴 한데 당장 선거를 치르는 입장에서 이상론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육감 선거가 정치인 선거와 똑같아요. 한데 소속 정당은 없고 정치인 선거에 묻히고… 후보 개인이 엄청난 금전적 부담을 안게 되죠. 그 구조 때문에 당선된 교육감들이 계속 감옥에 가는 겁니다. 인천이 대표적이잖아요. 따라서 3무 선거는 이상론이 아니라 현실론입니다. 하지만 다들 잘못됐다고 얘기만 하고 혀만 차지, 실제로 바꿔보려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제가 불이익을 감수하고 한 번 시도해보겠다는 거죠.”

- ‘3+3무’를 들고 나왔는데, 추가된 3무는 무슨 의미입니까.

“앞의 3무는 수입 측면이고 뒤의 3무, 즉 트럭·스피커·율동운동원 안 쓰겠다는 건 지출 측면이에요. 시장, 구청장 후보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데 교육감 선거 똑같이 치러봐야 표시도 잘 안 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후보자들이 교육 의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는 후보자간 치열한 토의를 통해 유권자에게 다가가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런 문제의식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될까요?

“언론에서 다양한 토론의 장을 마련해줬으면 합니다. 돈은 안 들고 유권자는 후보들 생각을 명확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죠. 학부모 분들, 시민단체, 종교계… 어디든 토론 자리를 만들면 가리지 않고 적극 참여하겠습니다. 저는 트럭·스피커·율동운동원 안 쓰는 대신 경인선과 인천지하철 1~2호선의 모든 역을 누빌 계획이에요. SNS로도 제 생각과 비전을 열심히 알릴 겁니다.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전파력이 생각보다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 사진=박융수 예비후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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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관료답지 않게, 그는 중앙에서 일하는 것보다 일선 현장에서 더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30년 가까운 공직생활을 접고 과감히 출사표를 던진 이유다. 일단 출마를 결심하자 그간의 행보는 훌륭한 자산이 되었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한 박 예비후보는 교육청뿐 아니라 교육부와 청와대, 국립대 근무를 두루 거쳤다. 미국에 유학해 현지 유·초·중등교육을 경험하며 교육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 대학 교수로 직접 강단에 서기도 했다. 고교 무상급식 문제를 놓고 정치인인 유정복 시장과 담판을 지은 것은 이런 경력과 네트워크가 뒷받침된 덕분이다.

-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된 본인만의 경쟁력은 뭔가요.

“부교육감과 교육감 권한대행으로 3년2개월 있었어요. 큰 실수 없이 마쳤다고들 평가해주시더군요. 개혁성도 필요하지만 교육의 기본은 안정성과 연속성입니다. 새 교육감이 오면 업무 파악부터 새로 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에게 강점이 있죠. 제가 30년 가까이 교육부 관료생활 하면서 중앙에만 있었던 게 아니거든요. 여러 곳을 거쳤어요. 교육감은 교육자, 교육행정가, 또 때로는 교육연구자도 되었다가 실천가도 되어야 해요. 제 프로필을 살펴보면 검증된 경력을 갖췄다고 유권자들이 판단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 다른 후보들에 비해 종합적으로 강점이 있다는 거죠?

“다른 후보 분들을 제가 평가하지는 않겠습니다(웃음).”

- 안정성·연속성도 중요하지만 개혁성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안주하기만 해서는 미래가 없으니까요. 지난 정부에서 누리과정, 국정교과서 문제가 불거질 때 제가 교육부 관료로는 거의 유일하게 다른 목소리를 냈어요. 누리 예산은 전부 삭감하자는 걸 담당 국장으로서 당시 정부·여당과 대립각을 세워가며 국고 5064억원을 확보한 ‘실적’이 있습니다.”

- 사실 관료가 그렇게 하기는 힘든데요.

“그건 제 천성인 듯해요. 보신주의 때문에 할 말을 못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교육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에 대해 유연하게 토론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바로 교육과 학습 아닐까요.”

- 진보와 보수 어느 쪽에도 갇히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중도가 양쪽 표를 다 얻을 수도 있지만 잃을 수도 있어요. 어떻게 해결할 겁니까?

“저는 진보와 보수 사이에 낀 중도가 아니라 양자를 아우르는 ‘교육 중심주의’를 표방합니다. 교육에는 정말 진보와 보수가 없죠. 단순한 레토릭(수사)이 아니에요. 유권자들도 진보·보수 구분이 허구임을 체감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 그럴까요?

“실용적으로 접근해야죠. 둘로 딱 나누면 확률이 절반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잖아요. 유독 표 대결에서 진보와 보수로 편 가르기 되는 건 후보자를 잘 모르니 유권자들이 편의상 그렇게 선택하기 때문 같습니다. 저를 포함해 다른 후보들도 진영 논리에서 탈피해 자신만의 콘텐츠로 표를 받는 노력을 해야겠죠.”

/ 사진=박융수 예비후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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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감이 되면 무엇을 할 겁니까.

“교육감은 선생님들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바람직하지도 않고 그렇게 되지도 않아요. 대한민국 교사들이 전문성과 자존감을 갖고 역량을 발휘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게 해야죠. 권한을 주고 여건을 만드는 게 교육감의 역할입니다. 여러 방법이 있어요. 예산·시설 확보, 교육과정 탄력성 부여 등등. 제가 교육감 권한대행 하면서 강조한 지점도 그거예요. ‘여러분 모두가 교육감입니다.’”

- 그건 비전일 테고요. 좀 더 디테일한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제 경력이 장점이죠. 만약 교사 생활만 하다가 갑자기 교육감이 됐다고 합시다. 교육청 예산 늘릴 수 있나요? 학교 신설할 수 있어요? 필요에 따라 정치인과 담판지을 수도 있을까요? 교육감이 시스템 전반을 꿰고 있어야 인천교육 관련 법령 제·개정, 예산 확보·증액을 어떻게 달성할지 큰 그림이 나옵니다. 교육감 권한대행 하면서 전국 최초의 사례를 몇 개 만들었는데요. 도림고 이전 건은 갈등 없게끔 선제적으로 대응해 시의회에서 통과시켰죠. 시끄러운 특수학교 설립 문제, 서울은 십수년째 한 곳도 설립 못했는데 인천은 제가 와 있는 동안 3개교 설립을 확정했어요. 시민에게 정확히 내용을 알리고 입지도 갈등이 없을 곳으로 선정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고교 무상급식 건도 있었고요.”

- 인천이 교육 낙후지역이란 이미지가 있어요.

“그렇죠? 그런데 인천이 소위 상위권 대학과 의학계열 대학, 과학기술특성화대, 사관학교 등 주요대학 진학 실적이 17개 시·도 가운데 3위권 정도 됩니다. 3년 전에 비해 순위가 많이 올라왔어요. 노하우가 중요합니다. 수시모집 학생부전형 비중이 크게 늘었잖아요. 거기에 맞춰 학생부 기록을 충실히 기재하고 개별 학교 교육과정도 수요에 따라 다변화했죠. 전통적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에 강한 지역이 대구와 광주거든요. 대입에서 수능 비중이 줄어드니 불리해질 수밖에요. 그래서 요즘에는 대구·광주에서 인천교육을 벤치마킹하려 합니다.”

- 교육감의 직접 관장 사항은 아니지만 대입에 대한 생각도 묻겠습니다.

“제가 1990년대 후반에 교육부 대입 담당 과장을 했어요. 실무자로 수시·정시 틀 마련에 관여했습니다. 당시에 수시 비율을 최대 30% 정도로 예상했어요. 지금은 거꾸로 된 거죠. 저는 단순하게 갔으면 합니다. 수시와 정시 비율을 50%씩으로 조정했으면 좋겠어요. 수능도 학생부종합전형도 나름의 의미가 있는 전형들입니다. 다만 학생부 준비를 잘한 학생은 수시 학종으로 진학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은 정시 수능으로 패자부활의 기회도 남겨두는 게 좋아요.”

- 자율형사립고·특수목적고 폐지 문제는 어떻게 봅니까.

“단순해요. 자사고·특목고 재지정평가에서 기준 이하 점수를 받으면 지정 철회할 수 있게 되어 있잖아요. 교육감은 인위적 개입을 하지 않고 평가 결과를 존중해 판단하면 됩니다.”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문제는요? 전교조의 법외노조 철회 여부는 중앙정부에서 결정할 사안이지만 노조 전임자 인정은 교육감 권한인데요.

“현재로서는 교육부가 전임자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방침을 따르는 게 기본입니다. 여러 무리가 있었던 박근혜 정부 때와 달리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서라면 더욱 그렇지요. 정부 원칙을 무시하고 교육감이 나서 전교조 전임자를 인정해준다? 그건 아니죠.”

그는 지난 19일 예비후보로 정식 등록했다. 캐치프레이즈는 ‘우리 아이들을 위한 교육전문가’. 색다른 실험을 시도하는 그를 석 달 뒤 17명의 교육감 중 하나로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3무 선거는 대세가 될까. 이번 교육감 선거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인천=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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