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이 10일로 꼭 1년이다. 탄핵 심판에 대해 국민이 주인임을 확인하고 한국의 민주주의 완성에 기여한 판결이라는 상찬이 적지 않다. 하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좀 다른 평가도 가능하다. 민주주의의 진일보라는 평가와 달리 소위 진보와 보수는 탄핵 심판을 계기로 감정의 골을 더 키워가고 있다. 건널 수 없는 강처럼 두 진영 간 심리적 거리가 커졌고 소통은 단절 상태다. 탄핵 전 진보가 거리를 주름잡았다면 탄핵 후에는 보수가 잇단 집회와 세몰이로 ‘실력 행사’에 나선 국면이다.

◆ 탄핵 후 커진 ‘진보’ 단체들의 목소리

탄핵 1년… 질주하는 '진보' 조직화하는 '보수'
탄핵 이후 외견상 집회가 크게 줄었다. 9일 경찰청에 따르면 집회시위 관련 형사처벌은 2016년 4391명에서 지난해 1828명으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과격 집회의 주인공이던 민주노총 등 진보진영이 탄핵 이후 집회를 크게 줄인 때문으로 풀이된다. 청와대와 행정부 등 권력 중심으로 대거 진입한 점이 거리집회 감소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탄핵 심판 이후로 정국을 주도한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진보단체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참여연대는 지난해 12월 ‘성명 불상의 다스 실소유주’를 고발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한 검찰 수사에 불을 붙였다. 지난달 29일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이달 6일엔 이병기 전 국가정보원장 등을 고발하기도 했다.

진보진영의 주축인 노동계 인사들의 권력 내 진입도 두드러진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을 비롯해 문성현 노사정위원장, 김동만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이석행 한국폴리텍대 이사장 등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출신 인사들이다.

전교조 역시 ‘법외노조’라는 교육부과 법원 판결에도 상근자 목소리를 점점 더 키우고 있다.

◆ ‘보수-진보’ 간 갈등의 골은 깊어져

보수 시민들은 거리로 몰려가고 있다. 빠르게 조직화되는 것도 새로운 움직임이다. 전군구국동지회와 애국문화협회 등 300여 개 보수 단체는 지난 8일 ‘자유대연합’으로 통합한다고 밝혔다. 보수대통합 논의는 지난 3·1절에 열린 집회를 계기로 가속화되는 모습이다.

좀처럼 집단행동에 나서지 않는 보수 지식인들도 적극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외교관 대학교수 대학생 등의 지식인 그룹이 커밍아웃하듯 보수 세력화에 힘을 보태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국본) 관계자는 “회원 수를 정확히 말해줄 순 없지만 탄핵 당시보다 크게 증가했다”고 전했다. 최저임금 인상 등 잘못된 정책으로 경제가 어렵고, 친북 노선에 불안해하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보수 세력화가 진행되면서 진보진영과 감정의 골도 더 깊어지고 있다.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3·1절 시민 집회에서 촛불시위를 기념하기 위해 진보진영이 설치한 ‘희망촛불’ 조형물과 현수막 등이 파괴되고 불 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부 보수 시민들은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반면 진보진영 인사로 추정되는 한 남성은 보수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대한애국당 당사에 폭발물로 의심되는 물건을 설치하고 테러를 암시하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