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방한 반대 등 정치적 주제뿐 아니라 성문제에 대한 대자보까지 다양한 내용의 대학가 대자보. 사진=조아라 기자

트럼프 방한 반대 등 정치적 주제뿐 아니라 성문제에 대한 대자보까지 다양한 내용의 대학가 대자보. 사진=조아라 기자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80~1990년대 성행했던 대자보가 최근 대학가 곳곳에 다시 퍼지고 있다. 과거 대자보가 독재 정권에 항거해 정치·사회적 실상을 알리는 기능을 했다면 최근에는 성 문제 등 학생들의 개인적 폭로나 소신 등을 알리는 성격으로 바뀌었다.

대자보가 다시 유행처럼 번진 것은 지난 2013년 고려대생이 손으로 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나붙으면서부터다. 당시 사회적 이슈인 철도 민영화와 밀양 송전탑 사태를 비판한 이 대자보는 대학가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답하는 대자보가 캠퍼스에 여럿 붙었다. 고교생과 시민, 정치권에서도 대자보 열풍이 일었다.

이를 계기로 국정 역사교과서, 최순실(최서원) 국정농단 사태 등 굵직한 사회적 이슈부터 학내 성추문, 교수 갑질 등 고발성까지 대자보들이 잇따라 캠퍼스에 등장했다. 국정농단 사태가 이슈화된 지난해 말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통령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최순실로부터 나온다' '잘 키운 말 하나 열 A+ 안 부럽다' 같은 풍자 성격의 대자보가 쏟아지기도 했다.

과거 민주화 운동 등 시국 관련 대자보가 전투적 문구를 주로 활용한 반면 최근에는 3·4 행시, 그림 등 내용과 수사, 형식의 구애를 받지 않은 신선한 대자보가 눈길을 끌었다. 군 내부 동성애자 색출을 비판하는 '나도 잡아가라' 릴레이 대자보 등이 화제가 됐다.

대자보 내용이 이처럼 달라진 것은 한편으로는 시대적 변화가 영향을 미쳤고,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권의식이 높아지는 추세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대자보의 부활은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매개체라는 점 때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인터넷과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의 발달로 손쉽게 의견을 표출할 수 있게 됐지만 그만큼 금세 지나가는 글이 되고 잊히게 됐다. 반면 오프라인 대자보는 기존 대자보가 주는 무게감에 손때 묻은 감정을 담아 호소력 있다는 게 강점으로 꼽힌다.

해학적 요소도 달라진 대자보의 특징이다. 문제의식에 오락성을 더해 젊은이들 사이에서 빠르게 흡수되고 있다. 이 같은 대자보는 페이스북 등 SNS를 타고 과거보다 더 광범위하고 폭발적인 위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허석렬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중요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통로였던 대자보가 최근에는 일상에서 접하는 직접적 사안에 대해 밝히고 호응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대자보의 문제점도 제기된다. 지난해 거짓 대자보로 인해 제자 성추행 누명에 시달리다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허 교수는 "개인의 인격이나 사생활을 침해하는 대자보는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잘못된 정보로 피해를 주거나 악용될 소지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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