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일 서울 세곡동 서울요양원을 방문해 치매 어르신들과 화분을 만들고 있다. 문 대통령은 환자 가족들과의 간담회에서 “치매 환자를 본인과 가족에게만 맡겨선 안 되고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뒤는 어머니가 치매를 앓고 있는 배우 박철민 씨.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서울 세곡동 서울요양원을 방문해 치매 어르신들과 화분을 만들고 있다. 문 대통령은 환자 가족들과의 간담회에서 “치매 환자를 본인과 가족에게만 맡겨선 안 되고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뒤는 어머니가 치매를 앓고 있는 배우 박철민 씨.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서울 서초구 구립서초노인요양센터는 정원 200명 규모에 대기자가 919명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서울 세곡동 서울요양원도 정원 150명이 꽉 찼고 대기자가 900명을 넘어섰다. 서울요양원 관계자는 “한 달에 퇴원하는 사람이 평균 두세 명에 불과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를 감안하면 현재 시점에서 입원까지 20년이 넘게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공립 요양원 대기자, 정원 5배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질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요양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치매 환자가 갈 수 있는 요양시설은 크게 요양병원과 요양원 두 곳으로 나뉜다.

요양병원은 의료진이 상주하며, 치료가 목적이다. 국민건강보험을 적용받지만 치료 행위에 따라 비용이 발생하고 장기 입원 시 간병인이 필요해 경제적 부담이 크다. 월평균 120만~200만원이 든다. 반면 요양원은 돌보는 게 목적이다. 의료진이 아니라 요양보호사가 서비스 제공자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적용돼 월 55만~65만원 수준에서 이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건강 상태가 양호한 치매 환자들은 요양병원보다 요양원을 찾는다.
"대기표 919번…치매 부모 공립요양원에 모시려면 20년 걸려"
그런데 우리나라는 요양원보다 요양병원 병상이 더 많은 기형적인 구조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보건의료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 1000명당 요양병원의 병상 수는 31.4개로 31개 회원국 중 1위다. 반면 요양원의 병상 수는 22.8개로 하위권(26위)이었다. 회원국 중 요양원 병상 수가 요양병원보다 적은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스위스 독일 호주 등은 요양병원을 없애고 요양원을 늘리는 추세다.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최소화해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우리나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정부가 요양병원 설립 규제를 느슨하게 운영하다 보니 보험수가만큼 고정 수익이 보장되는 요양병원이 급증했다. 대다수 민간 요양원의 서비스 질이 낮은 것도 요양병원을 선호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요양병원이 지나치게 늘면서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치매환자 기피하는 민간 요양원

민간 요양원의 질 저하 문제는 우선적으로 개선돼야 할 점으로 꼽힌다. 국공립 요양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 평가 결과 대부분 가장 높은 A(최우수)등급이다. 민간 요양원은 A부터 E(미흡)까지 천차만별이다. 시설 등급에 차이가 있어도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는 환자들이 부담하는 비용은 같다. 요양 수가가 시설 등급별로 세분화돼 있지 않아서다. 박해구 서울요양원장은 “국공립 편중 현상을 없애려면 요양 서비스의 표준 모델을 마련해 민간 시설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상태가 양호한 환자만 골라 받는 민간 요양원의 ‘크림 스키밍(cream skimming)’ 행위를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크림 스키밍은 ‘우유에서 크림만 먹는다’는 뜻으로 이익이 많이 나는 시장에만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한 요양원 관계자는 “치매처럼 의료 수가가 낮고 돌보기 힘든 환자보다 수가가 높고 누워만 지내는 외상환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는 치매 환자를 기피하는 민간 요양원을 일일이 단속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수가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치매 특성상 개별 환자 상태에 따른 적정 수가를 산정하기가 어렵다”며 “치매 환자에게 특화한 시설을 늘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