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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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아이가 서로 사랑해요. 그런데 부모와 아이의 사랑 방식이 달라요. 서로 다른 곳을 향합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부모는 억울해하고, 아이는 슬퍼해요. 부모는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도 되지만, 아이는 함부로 자기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게 대다수 한국 가정의 현실이죠.”

‘국민 육아멘토’로 불리는 오은영 원장(51)은 최근 서울 삼성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같이 말했다. 그는 “아이를 곧 자신의 분신이라 여기는 부모가 매우 많은데 이는 아주 위험한 사고방식”이라며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이의 생각과 발달 과정을 객관적으로 관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원장은 경기 수원과 서울 삼성동에서 오은영의원 소아청소년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SBS 프로그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와 EBS ‘부모’ 등 여러 방송과 무료 강연을 통해 ‘때리지 않는 육아법’의 중요성을 알렸고, 지난해 5월 쓴 책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는 지금도 육아 부문 스테디셀러다.

그는 키가 작았지만 목소리가 매우 크고 낭랑했다. 약 세 시간에 걸친 인터뷰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털어놓은 인생 이야기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내용이었다.

부모의 자랑스런 딸이었던 오 원장

오 원장은 서울에서 1.9㎏의 칠삭둥이로 태어났다. 공무원이던 그의 부친은 딸을 살리려 백방으로 뛰었다. “그때만 해도 이른둥이를 살리기가 힘들던 시절이었거든요. 부모님이 ‘갓 태어났을 때 사람이라기보단 마치 작은 쥐 같았다’고 말씀하셨어요. 천운으로 살아났는데 서너 살까진 병원을 제집 드나들듯 했죠.”

그는 “칠삭둥이로 세상에 나왔단 것부터 의사가 될 운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이른둥이였기 때문에 이른둥이 부모들이 자식 걱정할 때마다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많이 해 준다”고 말했다.

오 원장의 부모는 딸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여성이라 차별하지 않았고, 이른둥이라고 원망하지도 않았다. 언제나 “우리 딸이 최고”라며 “은영이 네가 하고 싶은 의미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도 좋다”고 독려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껜 그저 죄송할 뿐이죠. 무엇으로도 그 은혜를 갚을 수 없을 테니까요. 전 부모님 덕에 운명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제가 뭘 하든 자랑스러워하면서 적은 월급 쪼개 유치원과 사립초등학교 보내주신 아버지, 넉넉지 않은 살림인데도 아침마다 절 위해 생선 한 마리씩 꼭 구워 주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저 때문에 두 분이 얼마나 많이 희생하셨는지 절감합니다.”

연세대 의대에 입학한 뒤 전공을 정하는 과정에서 “외과 쪽을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주변의 권유를 뒤로하고 정신건강의학과를 택했다. 그는 “뇌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워낙 강했고, 인간이 인간다워지도록 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며 “사람의 행동은 무엇의 영향을 받는지 궁금해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됐다”고 말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정신건강의학과와 소아정신건강의학과는 배우는 내용이 완전히 달라요. 많은 사람이 소아정신건강의학과를 성인의 축소판 격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되려면 두 전공을 다 배워야 하거든요. 그 과정에서 소아정신건강의학과로 진로를 정했죠.”

오 원장은 “한 인간이 온전히 자라도록 지원하려면 가족과 사회, 국가를 하나의 단위로 봐야 한다”며 “그래야 비로소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부하면서 가장 많이 깨달은 게 이 부분이에요. 가정 문제와 사회 문제, 국가 문제가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걸 말이죠. 아직 한국에선 가정 문제를 쉬쉬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건강한 사회와 국가를 만들려면 가정 문제를 터놓고 얘기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나’와 ‘의사’ ‘엄마’라는 세 가지 이름

오 원장에게 “오은영이란 자아와 의사로서의 오은영, 어머니로서의 오은영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그는 “젊은 시절엔 그걸 분리해서 봤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결국 ‘나’라는 한 단어로 귀결됐다”고 답했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가정이 행복할 수 없어요. 특히 아이는 부모의 마음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거든요. 부모가 자아를 돌보지 않으면 그 가정은 파탄 나요. 저 역시 그걸 절절히 깨닫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는 2008년 대장암으로 투병한 사실을 털어놨다. 건강검진 과정에서 대장암이 발견돼 급히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전이되지 않아 항암화학치료는 받지 않았지만, 당시 기억은 잊지 못할 아픔으로 남았다. “수술실로 들어가던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하나뿐인 아들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늘 일만 하느라 제대로 곁에 있어 주지 못했거든요. 그때 이후 인생관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래야 한다’에서 ‘그럴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요. 그러다 보니 일상의 평범함이 참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오 원장의 아들은 대입 재수생이다. 그는 “아들이 재수생인 게 부끄러울 이유가 뭐냐”며 “아들이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말했다. “부모들이 자녀를 키울 때 남의 시선을 너무 많이 의식하는 게 문제입니다. 자녀와 눈을 마주칠 시간도 제대로 갖기 힘든 마당에 자녀는 외면한 채 ‘다른 사람에게 내 아이를 잘 보여야 한다’는 집착에 빠져요. 누구를 위해서 자녀를 잘 키워야 하는지 잊은 거죠.”

오 원장은 레지던트 시절부터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받는다. “자신의 정신건강을 살피지 못하면 가족도, 환자도 살피지 못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세상에서 나란 사람은 오로지 한 명뿐이잖아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잊어버려요. 스스로 건강해야 가정에서 좋은 부모가 될 수 있고, 사회적 역할도 건전하게 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 아이는 같이 자라는 존재”

오 원장은 “‘자기 먹을 숟가락은 다 하나씩 갖고 태어난다’는 속담을 제일 싫어한다”며 “아이는 절대 저절로 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부모가 아이를 방치해도 죄의식을 못 느끼는 경우가 많고, 육아법도 제대로 배우려 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부모와 아이는 함께 성장하는 존재”라며 “지나치게 잘 키우려 하는 것 역시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으니 무엇이든 ‘편안하고 적당하게 해야겠다’는 태도를 갖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또 “자녀에게 ‘꿈을 이루기 위한 공부는 매우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며 “부모가 먼저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 역시 같은 질환을 볼 때 30대 때와 40대, 50대에 들어선 지금의 모습이 다 달라요. 젊었을 땐 의학적 설명에 치중했다면, 지금은 감정의 소통을 중시하죠. 경험이 쌓일수록 쓰는 언어는 쉬워지는 것 같습니다.”

“부모가 살아온 길은 이미 지나온 길이잖아요. 자녀가 갈 길은 어떻게 펼쳐질지 몰라요.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도 알 수 없고요. 살아온 길만을 기준으로 자녀를 압박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인생은 누구도 대신해 살아주지 않잖아요.”

오은영 원장이 알려주는 육아 철학

"부모는 아이에게 '가장 안전한 공간' 돼 줘야"

[人사이드 人터뷰] '국민 육아멘토' 오은영 "부모와 자녀는 함께 성장하는 존재…자신의 꿈 강요 마세요"
오은영 원장은 부모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으로 “아이에게 ‘가장 안전한 공간’이 돼 줘야 한다”는 원칙을 꼽았다.

오 원장은 “아이가 무슨 일이 닥쳤을 때 제일 먼저 찾는 사람이 부모여야 한다”며 “부모는 언제나 손을 내밀어 주고, 안아주는 존재로 각인돼야 하는데 의외로 이게 잘 안 돼 있는 가정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용서의 부족’과 ‘지나친 완벽주의’를 원인으로 지적했다. “부모와 자녀가 감정 소통을 할 기회가 점점 없어지는 데다 ‘내 아이가 이럴 리 없어’란 강박이 자녀를 부모에게서 멀어지게 한다”는 게 오 원장의 설명이다. “요즘은 부모와 자식 간에도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려 하지 않는 가정이 많아졌어요.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집일수록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의 사소한 싸움조차도 용서하지 못하고 엄마들끼리의 싸움으로 번지잖아요. 부모의 그런 모습을 자녀들은 그대로 배워요.”

아울러 예비부부 또는 예비부모들에게 “부모가 되는 두려움을 애써 피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오 원장은 “새 생명을 낳는다는 건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자 말할 수 없는 공포”라며 “누구든 ‘내가 이 아이를 잘 키워낼 수 있을까’ 하는 본능적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신건강의학과의 문을 두드리는 걸 두려워하지 말길 바란다”고 했다. “부모의 모습은 가정마다 다 달라요. ‘이렇게 해야 좋은 부모’란 공식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의 정신건강을 꾸준히 체크하세요. 무슨 거창한 진단 같은 게 아닙니다. 작은 상담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조만간 한국에서도 정신건강의학과가 생활 속 병원으로 자리잡을 거라고 믿습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