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정문. / 사진=한경 DB
KAIST 정문. / 사진=한경 DB
[ 김봉구 기자 ] KAIST(한국과학기술원)가 학내 교수 출신 내국인 총장을 배출한다. 13년 만이다. KAIST는 그간 외국 국적 석학을 총장으로 영입했다. 그 결과 ‘개혁’을 키워드로 뚜렷한 성과를 냈다. 변화를 택한 이번 총장 선임이 ‘내실’을 다지며 도약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KAIST는 오는 21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제16대 총장을 선임한다. 최종 후보 3인은 경종민·신성철·이용훈 교수(가나다순·사진). 모두 내국인으로 현직 KAIST 교수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러플린 당시 스탠퍼드대 교수가 지난 2004년 ‘해외파 총장’의 스타트를 끊었다. 바통은 서남표 MIT(매사추세츠공대) 교수가 이어받았다. 그는 ‘대학개혁’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연임했으나 두 번째 임기는 다 채우지 못했다. 강성모 현 총장 역시 미국 UC머시드 총장을 지낸 해외파다.

해외파 석학들이 수장을 맡으면서 KAIST는 글로벌 인지도를 높였다. 작년 로이터 선정 ‘세계 100대 혁신대학’ 6위에 오른 게 대표적이다. 아시아 최고 순위였다. 교수들의 정년보장(테뉴어) 관행을 깨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연구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서남표 총장이 이끈 ‘KAIST발(發) 혁신’도 다른 대학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빛 뒤에는 그림자가 있었다. 서 전 총장 시절 학생들이 연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가 일어났다. 일정 성적기준을 충족 못할 경우 등록금 감면 혜택을 없앤 게 문제가 됐다. 국내 정서를 이해 못한다는 비판 속에 교수사회와 충돌을 빚기도 했다. 러플린 전 총장과 서 전 총장은 학내갈등 끝에 중도 퇴진해야 했다.
KAIST는 21일 이사회를 열어 총장후보 (왼쪽부터) 경종민·신성철·이용훈 교수 중 한 명을 총장으로 선임한다. / 사진=KAIST 제공
KAIST는 21일 이사회를 열어 총장후보 (왼쪽부터) 경종민·신성철·이용훈 교수 중 한 명을 총장으로 선임한다. / 사진=KAIST 제공
그래서 새 총장의 어깨가 무겁다. 그동안의 성과를 이어받으면서 부작용은 최소화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사회가 해외파 없이 국내파 3명으로 후보를 압축한 것은 ‘개혁 체화’와 ‘내실 있는 운영’에 방점을 찍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투 트랙으로 후보를 추천받은 KAIST의 관계자는 “경종민·이용훈 후보는 교수 투표를 거쳐 교수협의회가, 신성철 후보는 총장후보발굴위원회(발굴위)가 추천했다”고 말했다. 러플린·서남표 전 총장, 강성모 총장 등 해외파 추천 통로였던 발굴위 트랙을 통해서도 학내 교수 출신 내국인 후보를 추천한 점이 눈에 띈다.

학내에선 정부 영향력이 줄어든 데 대해 기대감을 내비쳤다. 한 KAIST 교수는 “교수 투표로 중지를 모아도 어차피 정부가 해외파 총장을 낙점할 거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번에는 교수들 의사가 반영될 뿐 아니라 후보 면면을 보고 총장을 선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귀띔했다.

서남표 전 총장 시절 교수협의회장으로 다른 목소리를 냈던 경종민 후보는 융합연구에 초점을 맞춰 “인문사회계열 중심 타 대학들과 교류를 늘려나가겠다”고 공약했다. KAIST 부총장을 거쳐 최근까지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총장을 지낸 신성철 후보는 중량감 있는 인사로 꼽힌다. DGIST에서 ‘무(無)학과 실험’을 한 그는 학과를 초월한 연구조직과 협업연구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용훈 후보는 “도전적 연구를 하면 30대 교수도 정년보장(테뉴어)을 받을 수 있게끔 하고 장기적 기초연구 지원 시스템도 마련하겠다”고 밝혀 학내에서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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