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간 9급 공채 18~19세 응시자 2배 이상 급증
부모와 노량진 공시학원 찾아 상담하는 고교생 많아

"대학에 진학할지, 공시족(공무원시험 준비생)이 될지 진지하게 생각해 선택한 길입니다.

대학은 나중에 다시 도전해도 되잖아요.

"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A(19)양은 자신이 원하던 대학 진학에 실패한 뒤 부모님과 함께 진로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다 최근 재수 학원 대신 공무원시험 준비 학원에 등록했다.

대학을 나와도 절반 가까이가 백수가 되는 사상 최악의 청년 고용 한파 속에서 일찌감치 공무원시험에 매달리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사회에서 아직은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무시당하지 않는다며 그녀의 결정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컸다.

A양은 "넉넉지 않은 형편에 학자금 대출을 받아 빚을 지고 대학에 들어간 이후 취업을 못 할 바에야 조금이라도 빨리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게 빠른 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사상 최악의 취직 빙하기가 도래하면서 A양처럼 일찌감치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공무원시험에 올인하는 10대 청년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과거 수험생 대부분이 대학생이나 직장인이었던 청주의 한 행정고시학원에는 연초부터 10명 가까운 고교 졸업생이 찾아와 공부하고 있다.

이 학원 관계자는 "과거에는 대학에 진학해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던 18∼19살 학생들이 많이 들어와 공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상담하는 고교 3학년 숫자도 부쩍 늘었다.

노량진의 한 9급 전문학원 관계자는 "수능을 치른 뒤인 12월부터 1월까지 부모님과 함께 학원을 찾아 공무원시험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수험생들이 과거보다 50% 이상 늘어났다"고 귀띔했다.

1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대졸 학력을 지닌 실업자는 45만6천명으로 1년전보다 3만1천명 증가했다.

대졸 실업자 규모는 2000년 관련 통계가 개편된 이래 가장 많았고 전체 실업자 중 대졸자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45.1%로 사상 최고 기록을 썼다.

실업자 2명 중 1명은 대졸자라는 의미다.

이런 분위기는 실제 공무원시험 응시생 숫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치른 국가직 9급 공채에 무려 22만2천650명이 원서를 냈으며 평균연령은 28.5세였다.

18∼19세 지원자는 총 3천156명으로 전체의 1.4%를 차지했다.

전체 응시자 중 18∼19세의 비율이 0.7%를 기록했던 5년 전인 2012년보다 두 배 이상 껑충 뛴 셈이다.

특이한 건 30∼39세 응시자(3.8%P 감소)를 제외한 나머지 연령대의 비율이 모두 조금씩 늘었다는 점이다.

공무원이 인기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연금개혁이 이뤄지기는 했지만, 일반 사기업보다 직업 안정성이 뛰어난 데다 육아휴직 등의 복지제도가 잘 갖춰져 있다 보니 구직자들에게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 학벌이나 편법이 적용되지 않는 시험을 통한 선발은 청소년들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유인책이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송민정 연구원은 "10대 청소년들은 대학 졸업장이 더는 우리 사회에서 좋은 일자리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양한 언론매체를 통해 접하고 있다"며 이 현상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이 공무원시험에 매몰되는 현상이 국가경쟁력을 저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근본적으로 고용불안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전 연령대에 걸쳐 나타나는 공시 열풍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은 "노동시장에서 유연성과 더불어 직업의 안정성도 굉장히 중요한 데 우리 사회는 안정성 측면이 매우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재취업의 기회 제공이나 실업급여 수준을 보다 강화하는 정부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공시 열풍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김형우 기자 vodcas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