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헌법재판소 앞 촛불만은 자제해야
몇 년 전 파키스탄 라호르 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다. 이방인 티를 안 내려고 옷가게를 가장 먼저 들러 파키스탄 사람 흉내를 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우리 일행은 가는 곳마다 표적이 됐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함께 사진을 찍자고 자석처럼 달라붙는 통에 여행기간 내내 경계심을 늦추지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라호르는 관광지로 꽤 알려진 곳인데도 외국인이 흔치 않다. 파키스탄이 종교와 인종, 이념 등으로 폐쇄적인 곳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이 주말 저녁 광화문 근처를 둘러봤다면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그곳에선 청와대를 향한 분노 이외의 다른 감정은 용납되지 않는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선 태극기를 들고 다른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탄핵이 기각되면 나라가 더 어지러워지겠죠? 그럴 바에는 파면 결정이, 그것도 빨리 나는 편이 낫겠죠? 주변에서 자주 듣는 얘기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기각하면 촛불시위와 비교도 안 될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으니 헌재의 결론도 뻔한 것 아니냐는 섣부른 관측마저 나온다. 촛불민심에 편승한 정치인들이 이런 바람을 부추긴다. 한 유력 대선후보는 “탄핵이 기각되면 혁명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적 수사’일 수도 있겠지만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헌법을 한 번쯤은 들춰보려는 청소년들이 행여 그런 말에 귀 기울일까 봐 걱정된다. 헌법과 법률을 어겼다고 대통령을 탄핵하는 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위헌·위법적 주장과 생각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넘쳐난다.

국민주권, 자유, 평등 같은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대표적 수단이 법치주의다. 법치주의는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의미한다. 권력자도 법 아래 있도록 하는 것이 법의 지배다. 권력자 하면 왕이나 귀족을 떠올리기 쉽지만 다수 시민도 될 수 있다. 비슷하게 보이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다. 폭군이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수단으로 법을 악용한다면 이는 법에 의한 지배다. ‘떼법’이나 ‘포퓰리즘입법’도 유사품이다.

일본에서 오키나와현의 미군 기지는 ‘뜨거운 감자’였다. 후텐마 비행장을 같은 현에 있는 헤노코 지역으로 이전하는 문제를 놓고 2년간 중앙정부와 투쟁을 벌인 오키나와현이 얼마 전 재판에서 졌다.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는 중앙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그럼에도 오나가 다케시 지사는 판결에 깨끗이 승복했다고 한다. 그는 “행정조직이 사법부의 최종 판단을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양식이 있는 검사들은 비록 기소한 대로 선고가 내려지지 않더라도 판결에 승복한다. 평소에는 판사가 사법시험 동기니 하며 만만하게 보기도 하지만 그가 내린 판결은 엄중하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도 헌재 인근은 철통 같은 방어막이 처져있었다. 그 사이를 뚫고 헌재 쪽으로 더 가까이 가려는 사람들과 경찰이 곳곳에서 실랑이를 벌였다. 기각이냐 파면이냐를 결정할 시기가 다가올수록 충돌은 더 격화되고 ‘탄핵’ 목소리는 더 커질 것이다. 헌재는 헌법과 법률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광장의 목소리가 헌재를 뒤흔들어선 곤란하다. 헌재 근처에서만은 촛불을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병일 사회부 부장대우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