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8 한일합의 직후 옛 日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 걱정돼 농성 돌입
"한일합의 폐기 또는 '철거 없다' 차기 정부 공식발표 나와야 안전 확신"

"이번 발표를 통해 이번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음을 확인한다."

한일 양국 갈등의 직접 원인 중 하나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놓고 지난해 12월28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발표한 합의 내용이다.

이 발표가 나오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비롯한 위안부 관련 단체뿐 아니라 시민사회, 대학가는 크게 반발했다.

특히 일부 대학생은 이 합의 발표 이틀 후인 그달 30일부터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맞은편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며 노숙 농성에 들어갔다.

소녀상이 이전 또는 철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들은 그때부터 꼬박 1년간 소녀상을 지켜왔다.

배화여대 영어통번역과에 재학 중인 최혜련(22·여)씨도 그중 한 명이다.

최씨는 27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소녀상 철거를 몸으로 막겠다는 생각으로 농성을 시작했다.

소녀상이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농성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소녀상 앞 농성 주체가 '한일협상폐기를위한대학생대책위원회', '한일위안부합의폐기소녀상철거반대대학생행동'에서 최근 '일본군위안부사죄배상과매국적한일합의폐기를위한대학생공동행동'으로 바뀌는 과정과 관계없이 농성장에 남았다.

최씨는 "처음에는 대한민국 국민의 양심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제가 한 말을 스스로 지키기 위한 책임감 때문에 남았다"고 설명했다.

소녀상이 철거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드는 조건으로 그는 한일합의 폐기, 박근혜 정권 퇴진 이후 소녀상이 철거되지 않는다는 정부의 공식발표를 들었다.

이전에도 자신이 외교부 직원이라며 농성장을 찾아와 소녀상 철거는 없다고 말한 사람은 있었지만, 공식적인 발표 없이는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 최씨와 다른 농성 학생들의 생각이다.

최씨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일 위안부 합의가 '용단'이라고 칭송했던 것을 언급하면서 "그때 본색을 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 총장이 대통령이 되면 (소녀상 안전 면에서) 최악"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녀상에 무언가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위안부 할머니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저를 보는 것 같기도 해 안쓰럽다"며 "제가 그때 태어났으면 같은 일을 당했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농성은 기본적으로 24시간 교대제로 이뤄진다.

순번을 정해 꼬박 농성하고 교대하는 방식이다.

농성에는 정기적으로 4∼5명이 참여하고, 비정기로 오는 사람까지 합하면 20명 정도 된다.

사람이 많지 않아 집에 가지 못하고 농성을 계속하는 경우도 있다.

최씨는 4월에는 내내 집에 못하고 농성장을 지켰다.

농성하는 과정에서 휴학도 감수했다.

부모의 반대가 컸을 법하지만 실제로 부모를 설득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최씨는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내 자식이 농성하는 게 싫은 거지 농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부모님도 아셨기 때문"이라며 "특히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에는 집에서도 더 많은 지지를 보낸다"고 전했다.

최씨는 최근 전국적인 촛불집회를 단순히 '비선실세 국정농단' 때문만이 아니라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그간의 실정이 쌓인 결과로 분석했다.

그는 "세월호 때 한 번 참고, 12·28 합의 때 한 번 참고, 살기 힘들고 세금 오르면서 참았던 것이 최순실에서 터진 것"이라며 "실제로 촛불집회 나가 보면 최순실 얘기만 하는 게 아니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최씨는 촛불집회 이후 어떤 세상이 왔는지 묻는 말에 "누구나 일한 만큼 벌 수 있고 등록금 걱정과 병원비 걱정 하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답하고는 "소녀상 철거는 특히 역사를 지우는 문제이므로 안 된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이것이 정말 우선시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농성하면서 가장 놀랐던 기억으로는 올해 6월 30대 여성이 망치로 소녀상을 내리쳤던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그때 일본대사관 터를 지키는 경찰이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보고서도 미동도 않고 있었고 결국 우리가 현행범으로 체포해 경찰에 넘겨야 했다"며 "당시 소녀상 철거 전에 여론을 시험해보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회상했다.

1년 내내 농성했지만 최씨는 아직 위안부 할머니들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적은 없다.

그는 "할머니들이 얼마나 많은, 좋은 사람들과 만나셨겠나"라며 "말로 인사를 건네기보다는 행동하는 것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comm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