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일 하지 않았다" 주장…검찰, 조목조목 반박

남상태(66·구속기소)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비리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지인이 운영한 업체에 투자하도록 종용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강만수(71) 전 산업은행장이 첫 재판에서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강 전 행장은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남성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구치소에 보름 이상 있으면서 벽을 보며 '통곡하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그 외에는 어떤 말로도 (심정을) 표현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공직에 있는 동안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고 부정한 돈을 받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며 "지금 사는 아파트 외에는 시골에 물려받은 논 외에 땅이 없고, 주식이나 골프장 회원권도 갖지 못하고 살아왔다"고 말했다.

강 전 행장의 변호인은 "지인이 운영하는 업체에 투자하게 한 것이 배임이라는 게 검찰 공소사실의 취지인데, 강 전 행장의 지인은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며 "이는 법리에 문제가 많은 공소 제기"라고 주장했다.

강 전 행장은 2011∼2012년 당시 대우조선 최고경영자(CEO)였던 남 전 사장에게 압력을 넣어 지인인 김모씨(구속기소)가 운영하던 바이오에탄올 업체 '바이올시스템즈'에 44억원을 투자하도록 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로 기소됐다.

변호인은 김씨가 대우조선으로부터 투자금을 받아낸 부분에 사기죄가 적용됐는데 강 전 행장에게 배임죄가 적용된 것은 모순된다는 입장이다.

사기죄는 피해자를 속여 돈을 받아내는 행위인데, 김씨가 대우조선을 속여 돈을 받아냈다고 기소하면서 강 전 행장에게는 임무에 위배해 투자하게 한 혐의(배임)로 기소한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변호인의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검찰은 "비슷한 사례에서 한 명의 피해자를 두고 사기죄와 배임죄가 함께 성립할 수 있다는 게 확립된 대법원의 판례"라며 "어떤 법리적인 문제가 있다는 건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어 "사기 대출 사건에서 대출해준 금융기관 직원은 배임, 대출자는 사기 혐의로 유죄가 인정되는 것과 동일한 구조"라며 "(변호인 주장에 대비해) 사례 분석을 해 뒀는데, 추가로 의견서를 내서 설명하겠다"고 강조했다.

강 전 행장은 바이올시스템즈에 투자하는 조건으로 당시 경영 비리 의혹을 받던 남 전 사장이 '명예로운 퇴진'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준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경영컨설팅팀으로부터 대우조선의 경영상 문제점을 보고받은 상태였지만, 남 전 사장에 어떤 민·형사상 조치나 문책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밖에도 강 전 사장은 고교 동창인 임우근(68·불구속기소) 회장이 경영하는 한성기업에서 수억원대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도 추가 기소됐다.

강 전 행장의 다음 재판은 내년 1월 12일 오후 4시에 열린다.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jae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