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을 지나던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심리하는 박한철 헌재소장과 상당수 헌법연구관은 18일 출근해 자료 검토와 법리 분석을 했다. 연합뉴스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을 지나던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심리하는 박한철 헌재소장과 상당수 헌법연구관은 18일 출근해 자료 검토와 법리 분석을 했다. 연합뉴스
“탄핵소추 절차에 심각한 법적 흠결이 있고 소추 사유는 사실이 아니며,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어 청구는 각하 또는 기각돼야 한다.”

18일 공개된 박근혜 대통령 측 답변서다. 박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단이 지난 16일 헌법재판소에 낸 것으로 국회의 탄핵 소추 사유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번주부터 본격화할 특검 수사와 향후 헌재의 탄핵 심리 과정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이 예상된다.
13건 탄핵사유 모두 부인한 박 대통령…뇌물죄 수사하겠다는 특검
탄핵 사유 조목조목 반박

박 대통령 측은 답변서를 통해 탄핵소추 절차의 문제점부터 따졌다. “탄핵소추안의 기초가 되는 사실관계는 검증되지 않은 의혹을 기정사실로 단정해 무죄추정 원칙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또 “첨부된 증거는 검사의 의견을 적은 공소장과 무분별하게 남발된 언론의 폭로성 의혹 기사뿐”이라며 “명확하게 소추 사유를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박 대통령 측은 대통령의 방어권 보장을 언급하면서 국회의 국정조사와 특검 수사 결과가 나온 뒤 헌재가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도 담았다. 국회가 ‘4~5%대 낮은 지지율’과 ‘100만 촛불 집회’를 탄핵 사유로 꼽은 것에 대해서도 “전체 국민의 뜻을 대변하지 않는 반(反)헌법적 발상”이라고 했다.

답변서는 헌법 위반 5건, 법률 위반 8건 등 13건의 탄핵 사유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적었다.

국정농단 의혹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국정수행 총량 대비 최순실 등의 관여 비율을 계량화한다면 1% 미만”이라며 “최씨의 이권 개입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했다. 박 대통령 측은 연설문 등 공무상 비밀누설 의혹과 관련해 “연설문을 최씨에게 살펴보게 한 이유는 국민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일부 표현의 주변 의견을 청취한 것”이라며 최씨의 역할을 ‘키친 캐비닛’이라고 규정했다. 키친 캐비닛은 미국 대통령이나 주지사 등의 사설 고문단 또는 브레인을 뜻한다.

미르재단과 관련한 뇌물죄 성립 여부에 대해서는 “대가를 조건으로 기부를 부탁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세월호 7시간’ 의혹과 관련해서는 “당시 정상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고 했다. 다른 혐의도 ‘정상적 업무 수행’과 ‘증거 부족’ 등을 내세워 반론을 제시했다.

박 대통령 측은 △최씨 등의 전횡이나 사익 추구를 인식하지 못한 때 △기업들의 미르재단 출연이 자발적일 때 △일부 연설문에 조언을 구했을 뿐 지속적 유출을 한 것이 아닐 때 등에는 탄핵소추 사유가 법적 근거를 잃게 된다고 주장했다.

특검·헌재 심리에 영향 주나

박 대통령 측이 구체적인 주장을 담아 탄핵 사유를 적극적으로 반박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특검 수사와 헌재의 탄핵 심리, 법원 공판 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헌재에 제출한 의견이지만 대통령의 강력한 무혐의 주장이 담긴 만큼 치열한 법리공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회 탄핵심판 소추위원단은 박 대통령 답변서에 대한 반박의견서를 오는 22일까지 헌재에 제출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헌재 답변서를 통해 특검의 대면조사나 청와대 압수수색 등을 거부할 명분을 확보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검찰이 최씨 등의 공소장에 적시한 공범 혐의를 박 대통령이 답변서에서 구체적으로 부인한 만큼 피의자 신분 자체를 부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장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박 대통령이 공범으로 명시된 혐의들을 법정에서 하나씩 뜯어보다 보면 증거 부족으로 무죄가 나올 수도 있다”며 “(박 대통령이) 전면 부인하는 만큼 법정에서도 상당한 시일을 두고 공방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특검은 오는 21일 서울 대치동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열고 본격 수사를 시작한다. 특검 대변인을 맡은 이규철 특검보는 “현판식 이전에도 소환 조사나 압수수색 등 수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검은 조만간 일부 대기업 총수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을 소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 총수 소환은 대통령의 ‘뇌물죄’를 적극 수사하겠다는 의지로, 김 전 비서실장과 우 전 수석 소환은 ‘세월호 7시간’과 ‘최순실 국정 농단’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