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분장에서 'ㅂㄱㅎ' 두더지 게임까지
시위 현장에 소 등장…외신 보도로 유명해진 '촛불파도'도 계속돼
"여성·청소년·장애인 비하 그만"…'혐오발언 아카이빙' 낙서도

사건팀 =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5주째 열린 26일 서울 도심 촛불집회는 풍자와 패러디가 넘치는 시민 축제 같은 분위기로 진행됐다.

이날 집회 현장에는 농민이 끌고 온 소가 등장하는가 하면 염원을 담은 풍등이 날아가고, 외신의 영상 보도로 유명해진 촛불파도도 이어졌다.

◇ 시민 '드립력' 뽐낸 풍자·패러디 집회
집회 참가자들은 기발한 깃발과 손 피켓 등을 통해 박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를 풍자하거나 그들의 발언을 패러디해 무거운 분위기로 일관될 수 있는 집회 분위기를 밝게 했다.

'박근혜하야 새누리해체 예술행동단 맞짱' 소속 배우 김한봉희(34)씨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얹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최씨 모습을 연출, 집회 참가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그 옆으로는 박 대통령 가면을 쓴 채 포승줄에 묶인 사람도 함께했다.

'박근혜 체포단'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서울대생 김모(20)씨 등 3명도 박 대통령 가면을 쓴 채 포승줄로 손목을 묶고 철창 모양의 종이로 얼굴을 가린 채 집회 현장을 돌아다녔다.

말(馬)머리 가면을 뒤집어쓴 공연기획사 '최게바라' 직원은 자신의 몸에 '유라꺼'라는 종이를 붙이고서 '1588-순실순실 OK! 대리연설'이라는 대리운전 광고물 패러디 피켓을 들었다.

광화문광장 중앙광장에는 박 대통령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사진을 붙인 펀치 게임기와, 박 대통령의 2012년 대선 당시 로고인 'ㅂㄱㅎ'와 '새누리당'·'미르재단'·'검찰' 등 로고가 적힌 종이를 붙인 두더지 게임기도 등장했다.

성균관대 학생 정지우(21)씨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 4%가 대학수학능력시험 9등급 백분위와 같다는 데 착안해 대통령 국정수행능력을 평가한 가상 수능 성적표를 출력해 피켓처럼 들었다.

◇ '범깡총연대'·'한국고산지발기부전연구회' 이색 깃발
1∼4차 촛불집회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깃발도 많았다.

청와대가 예산으로 발기부전제 비아그라를 대량으로 산 것을 비꼬아 푸른색 마름모꼴 알약 모양을 그려 넣고 '나만 비아그라 없어' '하야하그라' 등이라고 쓴 깃발이 여럿 등장했다.

이들 깃발 중 하나에는 '고산병 예방약으로 샀다'는 청와대의 해명을 의식한 듯 '한국 고산지 발기부전 연구회'라는 단체 이름도 적혔다.

그 밖에도 '퇴근혜'·'전국주름살연대'·'하야해듀오' 등 기발한 깃발과 '얼룩말연구회'·'범야옹연대'·'범깡총연대' 등 특정 애완동물의 이름을 딴 깃발도 눈에 띄었다.

모바일게임 '클래시오브클랜'의 호그라이더를 패러디해 돼지 얼굴에 박 대통령을 그려 넣고 그 위에 최씨가 올라탄 모양의 깃발도 보였다.

'독거총각결혼추진위'라는 가상 단체를 표방한 깃발도 나왔다.

깃발을 만든 한승민(39)씨는 "혼자인 사람들은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만들어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에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깃발을 찾아오라고 일렀다"며 "다만 나는 독거 총각은 아니고 다른 총각들을 결혼시키고 싶은 마음으로 만들었다"며 웃었다.

광장 한 편에는 시민들이 크레파스와 색연필 등으로 '나만의 깃발'을 만들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 소 끌고 풍등 날리고…기발한 이색 시위문화
한 농민이 소를 끌고 오는 드문 광경도 이날 집회에서 펼쳐졌다.

이날 오후 2시30분께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목격된 소 2마리는 붉은 글씨로 '하야하그라 박근혜'라고 흰 천을 등에 두르고 유유히 이날 서울 도심 집회를 유람했다.

이 중 한 마리는 오후 6시 130만 인파가 모인 채 진행 중이던 본집회 현장에까지 나타났다.

시민들은 소가 지나가는 자리를 따라 길을 비켜줬다.

소는 이날 '평화집회' 현장 한가운데서도 가장 평화롭고 느긋하게 움직였다.

무대 위에서 마침 공연 중이던 가수 안치환씨는 "소 타고 오고계십니다.

여러분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스님 등 100여명은 시민행진 때 큰 북을 치는 소리에 맞춰 삼청동 차벽으로 몰려가는 등 종교계도 이색 평화시위에 동참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박근혜 퇴진 등 염원을 담은 풍등을 날렸다.

최근 집회에서 계속된 '경찰 버스에 꽃 스티커 붙이기' 퍼포먼스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다만 이날은 나중에 의경들이 쉽사리 제거할 수 있도록 탈부착이 비교적 자유로운 특수 스티커가 주조를 이뤘다.

집회 주최 측은 외신들이 잇따라 영상보도해 유명해진 촛불 파도타기도 이어나갔다.

파도는 무대가 있는 광화문광장 북측광장에서 시작해 무대 인근에서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곳까지 계속됐다.

오후 8시에는 집회에 직접 나오지 않은 시민도 참여할 수 있는 '1분 소등' 전국민공동행동도 벌어졌다.

집회 현장에서는 가로등이 꺼지지 않아 '1분 소등'이 무색하게 밝은 현장이 계속됐지만 자택에 있던 시민들은 소등 '인증샷'을 찍어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하는 방식으로 원격 참여했다.

사직로에서는 일단의 시민이 도로 바닥에 '박근혜 하야' 등 분필 낙서를 벌였다.

참가자들은 특히 '혐오발언 아카이빙' 존을 만들어 여성·장애인·성소수자·청소년 등을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발언을 모아 적기도 했다.

이 '낙서 존'을 제안한 성미산학교 11학년 여인선(16)양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친구들 10여명과 분필을 사왔다"며 "'혐오발언 아카이빙'은 집회에서 혐오발언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따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여양은 "청소년이고 여성이다 보니 집회의 혐오발언에 예민하게 된다"며 '병신년'이라는 표현이나 비아그라를 매개로 '박근혜가 성생활을?'이라고 묻는 발언, 청소년들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아이고 우리 아이들 기특하다' 등 발언을 그 사례로 들었다.

(서울=연합뉴스) comm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