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새 2만마리 살처분한 농장주 "오리 묻을 때 나도 묻은 것" 눈물
추가 전염 가능성에 방역당국 '비상'…반경 10㎞ 내 52개 농장 시료채취

바글바글했던 오리 농장은 하룻밤 새 텅 비었다.

오리 1만여마리의 울음소리로 가득했던 농장 건물 한쪽에는 낯선 매몰지가 새로 생겼다.

17일 오후 2시께 충북 음성군 맹독면 조류인플루엔자(AI) 감염 확진 판정을 받은 농가 주변에 새하얀 방역복을 입은 공무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날 새벽 방역 당국은 이 농장주의 오리 2만2천여마리를 살처분했다.

지난 16일 이 농가 오리 200마리가 집단 폐사했고, 하루만에 확진 판정을 받았다.

살처분을 끝낸 지 7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포근해진 날씨 속에 매몰지 가스 배출관을 타고 악취가 품어 나오기 시작했다.

농장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서는 지난밤 살처분에 사용했던 방역복, 마스크, 장갑 등이 불에 타고 있었다.

매캐한 연기가 농장을 뒤덮었다.

마스크를 착용한 공무원들은 2명씩 짝을 지어 붉은색 경광봉을 흔들며 농장 반경 500m 도로 차량 통행을 전면 통제했다.

방역 차량은 쉴 새 없이 농장 인근 하천을 돌며 소독약을 살포했다.

AI 확진 판정을 받은 농장주는 "자식같이 애써 키운 새끼 오리를 땅에 묻으며 나도 죽었다"면서 "얼마나 더 죽어야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걱정과 불안에 휩싸인 일대 가금류 사육 농민들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이들을 비롯한 충북 축산 농가는 2014년 AI로 닭과 오리 180만 마리를 살처분한 경험이 있다.

맹동면에서 오리를 키우는 A(53)씨는 "AI가 퍼져 살처분하면 최소 5∼6개월 오리를 먹일 수 없는 데다, 정부 보상도 형편 없어 생계를 위협받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반경 3㎞(보호지역)에는 닭과 오리 총 91만마리를 키우고 있는 66개 농가가 모여있다.

이들 농가는 이날 사료를 주는 등 오리 먹이는 일상을 뒤로 하고 시료를 채취해 방역 당국에 제출하느라 분주했다.

이번 AI가 발생한 맹동면에는 오리·닭 농가가 밀집해 있다.

반경 10㎞(예찰 지역) 안에는 283개 농가에서 283만마리를 키우고 있다.

한 곳에서 AI가 발생하면 순식간에 음성·진천군 전체로 확산하기 쉬운 환경이다.

정일헌 음성군 맹동면 이장협의회장은 "2년 전 닭과 오리 수십만 마리를 살처분한 기억이 아물기도 전에 또 AI가 발생해 농가가 불안에 떨고 있다"며 "정성을 쏟은 농사를 한순간에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농가들은 상당히 예민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번에 맹동면에서 발생한 AI 바이러스가 충남 천안과 전북 익산의 야생조류 시료에서 확인된 것과 같은 고병원성으로 확인됨에 따라 방역 당국은 추가 전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방역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

음성군은 이날 AI 발생 경위 파악을 위한 역학 조사를 벌였고, 거점소독소 2곳과 7곳의 방역초소 설치 작업에 들어갔다.

인접한 진천군도 주요 도로마다 소독소를 설치하고 지나는 차량 등을 대상으로 소독을 실시하기로 했다.

음성군 축산식품과 관계자는 "해당 농가 이외에 추가 의심 신고는 접수되지 않았다"면서도 "시료를 채취한 일대 농가 검사 결과에 따라 추가 살처분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충북도 관계자는 "긴급 방역 행동요령에 따라 도축장과 사료 공장에 종합 방역을 지시했다"며 "도민들도 철새 도래지와 축산농가 방문을 최대한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음성연합뉴스) 이승민 기자 logo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