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호 운행률 하락 서민만 피해…고임금 노조 장기파업 비판 여론

성과연봉제 반대를 내걸고 지난달 27일 시작된 전국철도노동조합의 파업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열차 운행과정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철도노조의 주장대로 성과연봉제가 근로자의 근무여건에 큰 변화를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중대한 사안이기는 하지만 노사 간 팽팽한 대립 속에 파업이 더 길어질 경우 자칫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는 대형 사고 우려가 큰 만큼 사태가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평균 연봉 7천만원 안팎의 고임금을 받는 공기업 노조의 파업이 장기화한 가운데 KTX 운행은 평시 수준을 유지하지만 무궁화호와 새마을호 등의 운행률이 하락하면서 피해가 서민들에게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잇따르는 고장·사고
지난 22일 오후 3시 34분께 지하철 분당선 열차가 서울 왕십리역 근처에서 동력장치 고장으로 멈춰 서면서 승객 150여명이 한 시간 넘게 갇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군 소속 대체인력 기관사가 운전했던 이 열차가 터널 안과 밖에 걸쳐 멈추는 바람에 터널 쪽 열차 칸의 승객은 비상등만 켜진 내부에서 불안에 떨어야 했다.

승객들은 오후 4시 45분께 돼서야 선로로 내린 뒤 선로 위를 걸어서 왕십리역으로 이동해야 했다.

인명피해는 나지 않았지만 당황한 승객들이 열차 문을 열고 선로 위로 내리거나 했다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

23일 오후 5시 30분께는 경기도 고양시 지하철 3호선 대곡역에서 오금역 방면으로 출발하려던 전동차에서 연기가 발생해 승객 200여명이 긴급 대피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17일 오전 8시 4분께 서울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에서도 군 소속 대체 기관사가 몰던 코레일 소속의 인천행 열차가 출입문 표시등 점등불능 등 고장을 일으켜 멈춰 섰다.

지난달 29일 오전 8시 26분께는 분당선 왕십리행 열차가 서울 강남구 선릉역 승강장에서 선정릉역 방면으로 출발하다가 돌연 멈춰 26분간 정차하는 사고가 났다.

지난달 27일 오후 6시 39분께는 서울 지하철 4호선 쌍문역에서 열차가 승객을 내리지 않고 출발하는 사고가 나는 등 곳곳에서 승객 불편이 확산하고 있다.

◇ 파업 미참가자 '급여 나눠 갖기'에 비판적 시각
철도노조가 장기파업을 벌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파업 미참가자들의 급여를 참가자들과 '나눠 갖는' 관행이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코레일에 따르면 철도노조는 파업 미참가자들에게 '임금 형평성 상호보전 기금납부 동의서'를 배포했다.

동의서에는 기금납부와 자동이체(CMS) 출금에 동의하며, 출금액은 파업으로 인한 결근일 1일에 각자의 기본급 2%를 곱해 결정된다는 조항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월 급여가 400만 원인 미참가자가 동의서에 서명하면 25일간 파업 때 참가자와 미참가자가 각각 200만원씩 나눠 갖는 구조다.

철도노조는 과거 파업 당시에도 이 같은 방식으로 필수유지 인력이 받는 급여 일부를 파업참가자에게 지급했다.

코레일 측은 "이런 관행이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고 하지만 파업에 참가하지 않는 조합원들이 참가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동의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며 "임금 나눠 갖기가 사실상 강제성을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철도노조는 "코레일이 근무지에 남아 있는 필수인원들에게 임금 형평성 기금 계좌를 깡통으로 만들도록 종용하거나 당사자의 동의로 신청된 CMS를 해지하도록 압박하고 있다"며 "이는 노조의 자율적인 결정과 운영을 방해하는 부당노동행위인 만큼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철도노조원들이 해고된 조합원들에게 조합비에서 연간 60억원 이상을 떼어내 월급 성격으로 지급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부정적 여론이 있다.

철도노조는 90여명에 달하는 해고 조합원들의 생활비로 1인당 연간 수천만원을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해고 조합원들이 강경투쟁을 선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제와 취업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대우를 받는 공기업 노조원들이 벌이는 파업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코레일에 따르면 직원 1인당 평균 급여는 6천696만원이다.

이 중 기관사는 7천534만원, 열차 승무원 7천387만원, 차량관리원 6천428만원, 전기원 6천92만원, 시설관리원 5천510만원, 역무원 5천438만원 등이다.

이런 가운데 급여 수준이 높은 기관사와 열차 승무원의 파업 참여율이 90% 이상으로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기관사와 승무원들은 인력이 부족해 야간, 휴일, 대체근무가 많아 초과수당을 많이 받았기 때문인데 코레일이 기득권층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 서민들 많이 타는 무궁화호 등 운행률 하락
코레일은 파업 직후부터 KTX 열차와 통근열차, 수도권 전철은 평시와 같이 100% 운행했다.

파업 2주차부터 수도권 전철은 90% 수준으로, 3주차부터는 80%대로 줄여 운행한다.

하지만 서민들이 주로 타는 무궁화호나 새마을호 등 일반열차 운행률은 파업 이후 줄곧 50∼60%에 머물고 있다.

파업 28일째인 24일 운행률도 KTX와 통근열차는 100%, 수도권 전철은 86%였지만 새마을호는 58.7%, 무궁화호는 62.3%, 화물열차는 53.8% 운행에 그쳤다.

이 때문에 고임금을 받는 공기업 노조의 파업에 따른 부담이 서민들에게 가중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 파업 언제까지 가나…이번 주가 고비 될 듯
노사 간 교섭이 사실상 교착상태에 빠졌지만,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이 이날 경찰에 자진 출두한 데서 드러나듯 파업사태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최장기 기록을 갈아치운 이번 파업에서 '무노동 무임금' 원칙 적용에 따른 경제적 문제로 동요하는 조합원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파업 한 달을 넘어서는 이번 주가 파업 지속 여부의 최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위원장을 비롯해 업무방해죄로 고소당한 집행부가 순차적으로 경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겠지만 이와 무관하게 파업은 계속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파업이 한 달에 다다른 만큼 아무래도 이번 주가 고비가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코레일 관계자는 "노조 위원장이 경찰에 출두한다고 해서 파업 진행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하지만 노조가 최장기 파업기록도 갈아치운 만큼 이번 주에 어떤 변화가 있을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대전연합뉴스) 유의주 기자 ye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