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T보안 강국 위한 큰 전략 세워야"
“저는 영국 국적이지만 제 뿌리는 당연히 한국이라 생각합니다. 외국에서 자랐다고 해서 한국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건 거짓말 아닐까요. 영국에서는 자신의 뿌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을 더 존중합니다.”

최재호 영국 IBM 사이버·클라우드 보안 담당 이사(33·사진)는 초등학생 시절 영국으로 떠난 이민 1.5세대다. 최 이사는 지난 17일 개막한 ‘2016 세계한인차세대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서울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한인 동포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차세대대회를 찾았다”고 말했다.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는 세계한인차세대대회는 세계 각국의 정치·경제·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차세대 재외 동포를 모국에 초청해 정보 교류와 인적 네트워크 형성을 지원하는 자리다.

1993년부터 영국에서 자란 최 이사는 옥스퍼드대에서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를 전공한 뒤 영국 국방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 외무부, PwC, 언스트앤영 등에서 경력을 쌓고 2년 전부터 IBM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전문분야는 정부나 금융기관을 위한 정보기술(IT) 보안 업무로, 보안 체계 업그레이드부터 종합 시스템 구축까지 다양하다.

그는 IT 보안 전문가답게 한국의 IT 환경에 대해 따끔한 진단을 내놨다. 그는 “한국은 IT 강국이어도 IT 보안 강국은 아니라는 것이 세계의 평가”라며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국가 차원에서 사이버 보안에 대한 큰 전략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그가 소개한 대표적 사례는 유럽연합(EU)이 도입한 일반정보보호규정(GDPR)이다.

그는 “유럽에서 활동하는 기업이 해킹당했을 때 72시간 안에 정해진 조치를 하지 못하면 회사 연매출의 4%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기업은 보안 위기에 따른 비용이 막대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 사전 대처를 철저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최근 영국에선 해킹에 대비한 보험상품이 나오고 IT 보안 컨설팅 수요도 계속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한국도 정부가 큰 전략을 수립하고 기업들이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한다면 단순한 비용 소모가 아니라 새로운 경제 분야를 창출하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촉망받는 IT 인재로, 영국 미국 동남아시아 등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그가 굳이 한국을 찾은 것은 핏줄과도 관련이 있다. 그는 “독립운동가 조소앙 선생이 외증조부로 핏줄을 잊을 수 없다”며 “차세대대회에 참석하면 한국 문화를 더 이해하고 외국 사람에게도 한국에 대해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한국 정부나 기업과 같이 일할 기회는 없었지만 언젠가 조국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는 순간이 오리라 생각합니다. 한국인들도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IT 보안 분야에서 충분히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