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경찰·이웃 시민, 위험 상황 아랑곳없이 생명 구해

태풍 '차바'로 8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되는 상황에서도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폭우를 뚫고 거센 물살 속으로 들어간 시민, 경찰, 군인, 소방관이 있다.

자신도 위험한 상황이지만 도움의 손길을 놓지 않은 영웅들이다.

◇ 할머니들 구하려 물속에 뛰어든 군인…"할 일을 했다"
태풍 차바가 시간당 139㎜의 비를 쏟아 붓던 지난 5일 오전 김경준(57) 육군 53사단 울산연대 우정동대장은 우정시장 건물에 할머니 4명이 고립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곧바로 현장으로 가 보니 수십 명의 주민과 상인이 강물처럼 흐르는 물에 어쩔 줄 몰라 우정시장을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김 대장은 폭우에 휩쓸려온 스티로폼과 판자를 엮어 부표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 하나 버틸 수 있을 정도가 되자 지체 없이 시장 골목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수심 2m가 넘는 곳을 100m가량 헤엄쳐가 시장 바로 옆 상가 건물에 닿았다.

김 대장은 사력을 다해 상가 건물 지붕 위로 올라 가 주위를 살펴 할머니들을 발견했다.

할머니들은 20m가량 떨어진 골목 모퉁이에서 플라스틱 물통과 고무대야에 몸을 의지한 채 겁에 질려있었다.

김 대장은 상가 건물 지붕과 지붕 사이를 옮겨 가며 근처까지 갔지만, 손이 닿기는 역부족.
고무대야에 몸을 실어보기도 했지만 금방 뒤집혔다.

그러는 사이 119구조대가 도착했고 김 대장은 구조대와 함께 구명장비를 이용해 할머니 4명을 한 명씩 수심이 얕은 곳으로 부축해 구조했다.

김 대장은 "생각보다 수심이 너무 깊어 놀랐지만, 사람부터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며 "육군 간부로서 할 일을 했다"고 말했다.

◇ 침수지역 곳곳에서 빛난 경찰관들의 구조활동
울산중부경찰서 112타격대 정대윤 경사와 이주민 상경은 이날 오전 태화시장의 한 식당 상인으로부터 "물이 창문을 깨고 들어와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았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람 키보다 높이 물이 차 있었다.

이 상경은 바로 옆 침수된 차 위로 올라가 밧줄을 잡은 뒤 구명환을 정 경사에게 건넸고 정 경사는 밧줄에 연결된 구명환에 의지해 헤엄쳐 들어갔다.

정 경사는 식당 입구에 도착해 환풍기를 발로 차 공간을 만든 뒤 대야에 의지해 버티고 있던 60대 식당주인을 구명환에 태웠다.

이 상경은 곧바로 밧줄을 끌어당겨 이들을 사지에서 구해냈다.

이 상경은 "복무 중에 처음 겪는 일이라 긴장도 됐지만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태풍에 경찰관들은 반지하 방에 고립된 주민을 쇠창살을 부숴 대피 시키고, 물살이 거세 어린이집에서 나오지 못하는 아이를 업고 나오기도 했다.

또 출산이 임박한 임신부가 도로 침수로 병원에 갈 수 없게 되자, 순찰차에 태워 이송했다.

◇ '얼굴 한 번 본적 없지만'…우리 이웃 시민 '영웅'
지난 5일 차량이 둥둥 떠다닐 정도로 불어난 태화강 둔치 주차장 한쪽에 여성 한 명이 위태롭게 서 있었다.

119구조대를 기다릴 수 없을 만큼 위급한 상황. 그때 남성 시민 한 명이 허리에 밧줄을 감고 강물로 뛰어들었다.

떠내려오는 부유물을 피해 30∼40m를 헤엄쳐가더니 여성을 붙잡고 다시 사력을 다해 강물을 헤쳤다.

뭍이 있는 곳으로 가까워지자 또 다른 시민이 돕기 위해 강물로 들어갔고 주변의 다른 시민들은 밧줄을 던져 이들을 모두 구해냈다.

비슷한 시간 울주군 언양읍 반천 현대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주변 도로에서 흙탕물이 폭포가 떨어지듯 흘러들어왔다.

지하주차장에는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주민이 있어 위급한 상황이었다.

이때 보고 있던 주민 4∼5명이 주차장 담을 딛고 올라가서 손을 뻗었다.

다른 주민들은 구조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몸을 붙잡았다.

주민이 손길을 모아 갇혔던 주민을 무사히 끌어 올렸다.

한 시민은 "평소 얼굴 한 번 못 봤던 사이일 수 있지만, 태풍 속에서 힘을 합쳐 돕는 모습이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고 감동적이다"고 말했다.

(울산연합뉴스) 김근주 기자 cant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