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시효 소멸…강제노역 대가 제대로 못 받고, 합의하면 집행유예 그칠 수도
염전노예·차고노예 가해자 처벌 솜방망이 논란…"장애인 범죄, 처벌 강화해야"

19년간 지적장애인 고모(47)씨를 강제 노역시킨 청주 오창의 농장주 김모(68)씨에 대한 경찰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경찰 발견 당시 극심한 불안 증세와 대인기피증을 보이며 조사에 제대로 응하지 못했던 고씨가 안정을 회복하면서 자신이 겪었던 피해를 구체적으로 진술하면서다.

19일 고씨에 대한 2차 피해 조사를 마친 경찰은 20일 그가 강제노역했던 오창 축사 현장도 방문, 구체적인 피해 정황을 확인한다.

농장주 김씨는 임금을 주지 않으면서 고씨에게 일을 강요했고, 때로는 밥을 굶기는 등 학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충남 천안 양돈농장에서 생활하던 고씨가 오창까지 오게 된 경위가 석연치 않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의혹이 사실이라면 김씨는 근로기준법상 강제근로 금지 및 임금 지급 의무를 위반한 게 된다.

강제로 일을 시켰을 때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 임금 미지급 때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장애인복지법도 적용받을 수 있다.

돌보는 장애인 보호에 소홀했거나 정서적으로 학대했다면 각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노동력 착취를 위해 고씨를 돈 거래한 것이라면 형법상 인신매매 혐의가 적용돼 2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다.

얼핏 보면 장애인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촘촘한 것으로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장애인을 부려 먹으며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은 업주 처벌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발생한 '염전노예' 사건이다.

국민적 분노를 산 이 사건과 관련 20건의 관련 재판이 진행됐다.

이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은 6건에 불과했다.

일을 제대로 못 한다며 근로자를 흉기로 찔러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된 업주에게 선고된 징역 5년이 최고형이다.

이마저 1심에서 6년이 선고됐지만 2심에서는 업주가 반성하고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1년 감형됐다.

장애인을 감금·폭행하고 노동력을 착취한 업주에게는 징역 6개월에서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나머지 13건은 집행유예가 선고됐고, 1건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현행법상 장애인 인권을 짓밟고, 노동력을 착취하면 징역을 살아야 하는데도 현실에서는 합의를 이유로 대부분 '면죄부'를 받아 집행유예에 그친 것이다.

피해 장애인들이 업주로부터 임금을 모두 챙겨 받았던 것도 아니다.

근로기준법상 임금 채권 소멸 시효는 3년이다.

염전 사업자들은 '염전노예' 사건이 터진 후 피해자들에게 3년 치 체불 임금만 지급했다.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으로 정신·재산상 피해 보상을 받기는 했지만 어쨌든 현행법상 체불 임금은 3년 치에 한해 보상받을 수 있다.

지적장애인 등 의사 표시를 제대로 못 하는 경우 소멸 시효를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김씨가 19년 전 소 중개인에게 사례비를 줬다는 의혹도 있지만, 경찰은 이 부분 수사를 뒤로 미뤄놓고 있다.

소 중개인이 10년 전 교통사고로 숨져 19년 전 상황을 입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노동력 착취를 목적으로 인신매매했을 경우 형량은 형법상 2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형이다.

그러나 인신매매 공소 시효가 10년이어서 설령 김씨가 소 중개인으로부터 고씨를 돈으로 거래한 것이 확인돼도 처벌이 어렵다는 게 경찰의 분석이다.

농장주 김씨는 다른 인부는 고용하지 않은 채 19년간 고씨에게 일을 시켰다.

작년까지는 축사의 소가 100여 마리에 달했다.

그러나 전례에 비춰볼 때 19년 치 임금 가운데 일부만 지급하고 고씨와 합의하면 실형을 피할 수 있다.

사회적 지탄은 받겠지만, 신체 구속을 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자신이 돌보던 장애인을 8개월간 차고에서 생활하게 하고 20여 년간 임금을 주지 않았던 청주 이모씨도 7년 전인 2009년 법정에 섰지만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자신의 입장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장애인을 학대했는데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왔다.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국민 정서를 외면한 채 사법부가 장애인 학대 범죄에 면죄부와 다름없는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며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지적 장애인의 인권을 유린하거나 학대하는 것을 근절하기 위해 가해자를 엄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주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k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