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톡스 시술, 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허용 등에 '직역 이기주의' 비판도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진료 영역을 두고, 다른 보건의료단체로부터 연일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보건복지부 등 정부 당국이 국민적 합의가 먼저라며 치과의사 보톡스 시술, 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허용 등 현안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내놓지 않으면서 현 추무진 회장에 대해 의협 회원들의 불만도 가중되고 있다.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협은 대한치과의사협회(치협)와 치과의사 보톡스 시술 문제를 놓고 불편한 관계에 있다.

지난달 대법원의 공개변론까지 진행됐지만, 문제 해결이 요원한 상황이다.

의협은 치과의사의 진료 범위를 입 주변 및 구강에 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치협은 얼굴 근육에 대한 교육이 치과대학에 충분히 포함돼 있으므로 보톡스 시술에 문제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와의 관계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부터 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허용 여부를 두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으나 이 역시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의협이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통한 올바르고, 정확한 진료권 보장'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의협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지만, 논의만 길어질 뿐 정부가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추무진 의협 회장은 '반박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의료계 중론이다.

의료계 내부에서는 SNS 등을 통해 추 회장의 소통 능력 부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한 의료계 인사는 "추무진 회장이 주요 사안에 너무 늦게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며 "회원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면 현 추무진 회장 집행부에 대한 지지기반은 더욱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협과 치협, 한의협 등 이들 보건의료단체가 항상 냉전 상황이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가 '의료 영리화'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2014년에는 공동 대응에 나서면서 단합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1월 의협, 치협, 한의협을 비롯해 대한한의사협회, 대한간호협회, 대한약사회,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는 서울역에서 대국민 홍보 캠페인을 함께 전개한 바 있다.

그러나 2년이 조금 넘은 현재는 쟁점별로 단체들 사이의 갈등이 심해진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의협은 의료 영리화 등 전체 의료계를 아우르는 공통 이슈에 대해서도 타 단체와 공조를 하는 모습을 더는 보이지 않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환자단체까지 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허용과 관련해 의협과 정반대의 입장을 내비쳤다.

지난 2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의료일원화 토론회'에서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면 의사만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할 것이 아니라 한의사, 간호사에게까지도 허용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의협이 타 단체나 정부 당국과 빚고 있는 갈등을 '직역 이기주의를 내세운 밥그릇 싸움'으로 보는 비판적 국민 여론도 추 회장 입장에서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보건의료단체 관계자는 "솔직히 표현하자면 의협은 무조건 다 자신들의 영역이라고 주장한다"며 "다른 보건의료인과 상생하려는 자세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건의료단체 관계자는 "인터넷 댓글만 봐도 국민이 의사들을 얼마나 직역 이기주의에 빠져있다고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무조건 의과대학, 의사의 학문·진료 영역이라고 주장하기보다 진정으로 국민의 건강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민수 기자 km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