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10번출구에 추모쪽지 이어져…주말에 촛불집회 예정
여성이 범죄에 쉽게 노출되는 현실 비판 쪽지 많아

강남역 인근 주점 건물 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살해된 20대 여성을 추모하는 물결이 사흘째 이어지고 있다.

20일 오전 찾은 강남역 10번 출구의 추모 쪽지가 붙은 벽 앞에는 20여명이 걸음을 멈추고 서서 쪽지를 적어 붙이거나 다른 이들이 적어놓은 메시지를 읽고 있었다.

쪽지에는 10번 출구 벽을 빼곡히 채우고, 벽면을 넘겨 강남대로와 인도 사이에 세워진 펜스에도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벽면 아래는 흰 국화가 제법 높이 쌓였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여성혐오 범죄를 비판하는 내용과 더불어 '살아남았다'는 문구와 함께 여성이라서 범죄의 표적이 되는 현실을 꼬집는 메시지가 특히 눈에 많이 띄었다.

'오늘은 운이 좋아 살아남았지만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목숨을 부지하기 두렵다' '살아남아 죄송합니다', '당신은 태어났기 때문에 이유없이 받는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이 있나요', '다음 타깃은 저겠죠, 여자니까요' 등의 문구였다.

강력범죄 피해자의 80% 이상이 여성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여자라서 죽었다", "우리는 모두 우연히 살아남은 여성들" 등의 내용이 담긴 쪽지들도 상당수 붙었다.

근처에 스터디를 가다 들렀다는 대학생 김현영(21·여)씨는 "여성들이 약하다는 이유로 범죄 표적이 되는 현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해줬다"면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생 박모(24·여)씨는 "일각에서 여성 혐오 범죄인지, 정신분열증 환자의 범행인지 갑론을박이 있다"면서 "그것보다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가 공론화됐다는 점이 더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조화를 둘러싼 작은 해프닝도 있었다.

전날 밤 한 극우성향 커뮤니티사이트가 '남자라서 죽은 천안함 용사를 잊지말라'는 문구를 달아 조화를 보내 논란이 됐디. 해당 문구가 담긴 리본은 누군가에 의해 곧바로 떼어졌다.

다른 조화 10여개와 나란히 맨 끝에 세워진 이 조화에는 추모를 조롱하지 말라는 비판 쪽지가 함께 붙어있다.

이날도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에는 추모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은 쪽지 사진들과 '#살아남았다', '#여성혐오범죄' 등의 해시태그가 달리거나 추모의 뜻을 담은 피 묻은 흰색 리본 이미지가 올라오고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 '강남역 10번출구' 주최로 전날 이곳에서 촛불 추모제가 열린데 이어 21일에도 추모제가 열릴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설승은 기자 se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