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금산의 한 시골 마을에는 팔순이 넘은 할머니 4명이 제2의 인생을 사는 마을회관이 있다.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내고 자녀들을 출가시킨 뒤 홀로 살던 할머니들이 함께 밥을 해 먹고 간단한 놀이도 하며 잠도 함께 자는 '할머니들의 보금자리'다.

돌봐주는 사람 없이 홀로 살다가 아파도 말할 곳도 없이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안타까운 경우를 예방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이 마을 이장 한상구(60)씨는 네 할머니의 아들이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들르거나 간단한 반찬을 만들어 마을회관을 찾아 할머니들의 안부를 묻는다.

물론 할머니들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때에는 동료 할머니가 제일 먼저 휴대전화 1번에 저장된 이장에게 전화한다.

지난해 5월 어느날 아침 논에서 일하던 한 이장에게 전화가 왔다.

할머니 한 분이 갑자기 횡설수설하더니 고열과 함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등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는 전화였다.

이장은 즉시 마을회관으로 달려갔고 할머니를 신속하게 병원으로 옮겼다.

할머니들이 함께 살지 않거나 이들의 안부를 챙길 이장이 없었다면 자칫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올해 전국의 혼자 사는 1인 가구도 523만202가구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 1인 가구가 144만2천544가구로 전체의 25%가량을 차지했다.

이에 따라 가족이나 친지 없이 홀로 숨지는 사람들, 이른바 고독사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고독사 예방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공동 생활제'나 '문안 프로젝트', '친구 만들기', '자원봉사자와 연결하기' 등이 그것이다.

보건복지부는 ▲ 생활관리사가 독거노인 댁을 방문하거나 전화로 안부를 확인하는 노인돌봄 서비스 ▲ 화재·가스누출·건강악화 등 위급상황 발생시 신속히 대응하기 위한 응급안전돌봄 서비스 ▲ 주변 사람과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친구 만들기 ▲ 민관이 운영하는 콜센터 직원이나 자원봉사자와 연결해 주는 사랑 잇기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노인 인구 비율이 높은 강원도는 이·통장들이 독거노인 등 자살 우려가 있는 고위험군을 수시로 관리하는 '생명사랑 마음나눔 공동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경남도는 65세 이상 노인들이 공동주거시설에서 생활하면 전기·전화요금 등 각종 공과금을 지원해 주는 '독거노인 공동주거시설 지원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충남도도 2010년부터 공동취사·공동숙박을 할 수 있도록 한 '독거노인 공동생활제'를 운영하고 있다.

마을 경로당이나 빈 주택을 활용해 공동생활제를 시행하면 초기 설치비로 1곳당 1천200만원까지 지원하고 매년 1곳당 510만원의 운영비를 지원한다.

충북도는 60세 이상 노인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홀로 사는 노인 가정을 방문해 안부를 묻고 건강을 확인하는 '9988 행복지키미와 노인돌봄 기본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홀로 사는 노인들의 건강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노인 일자리 창출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고 있다.

제주에서는 독거노인 고독사 예방을 위한 '독거노인 친구 만들기'와 함께 독거노인의 안부와 안전을 확인하는 독거노인 원스톱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부산 기장군에서는 일정 시간 이상 TV를 보지 않거나 채널 변경 없이 장시간 TV를 켜놓는 등 이상 징후가 보이면 복지 담당자에게 경보 메시지를 보내는 '독거노인 안심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대전시도 노인 고독사 예방을 위해 '노인공동가정조례'를 제정했다.

홀로 사는 노인의 고독사를 막고 생활비와 주거관리비를 줄여 빈곤노인들의 생활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독거노인 5∼7명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해 시가 시설 개·보수비 및 운영비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민성 부산사회복지연대 사무국장은 "1인 가구가 빠르게 늘고 경기 침체로 취약계층이 생계를 꾸려가기에 어려움을 느껴 생기는 게 고독사"라며 "가족공동체가 무너지며 생긴 현상인 만큼 같은 공동체에 사는 청년과 노인을 연결하는 대안가족 등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고독사 예방 정책은 대부분 홀로 사는 노인을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한계도 있다.

고독사가 과거에는 주로 독거노인에게서 많이 발견됐지만 최근에는 50대 이하에서도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인 김춘진 의원이 지난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무연고 사망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나이를 확인할 수 있는 무연고 사망자 가운데 50세 미만이 187명으로 2013년 117명보다 60%가량 늘었다.

홀로 생활하다 생을 마감하는 '고독사'가 더는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여기에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1인 가구라는 점을 고려하면 고독사 잠재군은 상당히 폭넓게 존재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권중돈 목원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40∼50대 고독사는 완전히 사각지대에 있다"며 "일을 하거나 일을 하려고 가족과 떨어져 사는 중장년층이 고독사의 위험에 노출된 만큼 이를 보완하기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지혜 오수희 김소연 박영서 심규석 오태인 한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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