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새내기들에게 들려주는 총장들의 '입학식 메시지'
“대학의 낭만과 지식을 즐기기도 전에 학점과 스펙 경쟁으로 이어지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대학은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무한한 상상력과 호기심, 가능성의 장(場)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29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본교. 2016학년도 신입생들 앞에 선 염재호 총장은 몇 번이나 ‘꿈’을 강조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취업난 속에서 학생들이 입학과 동시에 자칫 ‘스펙 쌓기’와 ‘학점 따기’에만 몰두할까봐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지난 18일부터 이날까지 주요 대학의 입학식이 열린 가운데 축사에서 자아와 창의성, 삶의 의미 등을 강조한 총장과 연사들이 많았다. 대학 본연의 의미를 외면한 채 ‘취업 준비부터 하고 보자’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입학식 축사에도 이에 대한 우려가 그대로 반영됐다는 게 대학가의 분석이다.

이날 고려대 입학식에는 이례적으로 동문인 박웅현 TBWA 대표(신문방송학과 81학번)가 연사로 나섰다. 박 대표는 “이 자리에 앉아있는 신입생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단어가 스펙이나 취업이 아니길 바란다”며 “오늘 입학식 자리는 취업 전선으로 나가는 경기장에 입장한 게 아니라 20대 즐거운 축제의 장이고, 옆에 있는 사람들은 경쟁자가 아니라 20대 축제를 같이 즐길 친구들”이라며 대학생활을 최대한 즐길 것을 강조했다.

지난 26일 열린 연세대 입학식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 김용학 총장은 “‘올A’를 받겠다든지, 3개 국어에 도전해 보겠다든지, 좋은 직장에 가겠다든지 하는 여러가지 당찬 계획들을 세우기에 앞서 ‘왜 내가 이걸 해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해보길 바란다”며 “우리 대학은 출세를 위한 스펙 쌓기와 젊음의 패기를 맞바꾸는 곳이 아니다”고 말했다.

‘흙수저’ ‘헬조선’으로 대변되는 젊은 층의 남 탓, 자기비하 문화에 대한 일침도 잇따랐다. 정규상 성균관대 총장은 “많은 젊은이가 환경을 탓하며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며 “먼저 앞에 놓인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원윤희 서울시립대 총장 역시 같은 날 입학식 축사에서 “최근 ‘흙수저’라는 신조어가 나오는 등 젊은이의 기를 꺾는 분위기가 만연하지만 그런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말라”며 “자신의 환경이나 남을 탓하지 말고 장애물을 디딤돌로 생각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취업, 고시 합격 등을 목표로 하는 청년들에게는 가치관의 전환을 촉구하는 축사도 이어졌다. 조인원 경희대 총장은 “학력과 학벌이 중시되는 경쟁사회에서 획일화의 길을 걷지 말고 삶의 가치와 의미를 헤아려야 한다”고 말했다.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도 “폭넓게 듣되, 듣지만 말고 반드시 질문하고 대화하라”며 “지금이라도 자신의 미래에 대해 여러 각도로 생각해보라”고 권고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새내기들에게 주체적으로 살라는 내용의 조언도 나왔다. 유기풍 서강대 총장은 “대학에서의 배움은 여러분 스스로 하는 것이고, 교수들은 여러분을 도울 뿐”이라며 “세상의 모든 곳이 배움의 장인 만큼 대학 4년 동안 어디든지 가서 도전하고 경험하라”고 말했다.

김인철 한국외국어대 총장은 “여러분의 생각이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며 “패기를 갖고 넓고 멀리 보면서 도전과 실천을 멈추지 말라”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대는 2일 오전 11시 본교 종합체육관에서 입학식을 연다.

윤희은/마지혜/박상용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