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동장군이 수은주를 영하 10도까지 끌어내리며 기세를 부리던 지난 13일 오전 7시. 나비넥타이를 맨 한 남성이 현대자동차 공주지점으로 들어왔다. ‘7년 연속 현대차 판매왕’ ‘하루에 차 한 대를 파는 열혈 장사꾼’으로 잘 알려진 임희성 현대차 공주지점 영업부장(42·사진)이다.

그의 오른손에는 한 뭉치의 전단이 쥐어져 있었다.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는 ‘오후 1시 유구읍 아반떼’라는 글귀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아침 판촉을 하고 오는 길에 적은 소비자와의 약속이라고 했다. 고객과의 중요한 약속을 잊을까 봐 15년 전부터 손등에 메모를 했다. 임 부장은 “영업의 생명은 소비자와의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라며 “차가 아닌 신뢰를 판 것이 인구 11만명의 소도시에서 전국 영업왕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말했다.

미생에서 완생으로

공주에서 한 해 팔리는 차량은 3000여대. 지난해 임 부장이 판매한 차량은 385대다. 영업맨 한 명이 공주시 자동차 판매시장의 10%를 차지했다.

임 부장은 입사 4년 만에 현대차 판매 전국 10위에 오른 뒤 8년차부터는 줄곧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연봉은 약 2억7000만원. 강연 요청이 쇄도하고 영업 비결을 담은 책도 출간했다. 40대 초반에 그는 성공가도에 들어섰다.

[人사이드 人터뷰] '현대차 판매왕' 임희성 부장, 휴대폰 끝번호 '8000'…차 8000대 팔겠다는 의지 담아
임 부장은 “처음에는 성공과는 거리가 먼 인생이었다”고 지난날을 되새겼다. 이어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절실함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 같다”고 했다. 학창시절 그는 공부에는 재능이 없었다. 공주고 재학 때 성적은 한 반 45명 중 44등. 꼴찌에게 오라는 대학은 없었다. 재수 끝에 전문대에 진학했지만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직후 한국에선 전문대 졸업생이 들어갈 수 있는 번듯한 직장은 없었다. “가진 건 몸뿐이었습니다. 아내가 임신해서 가정을 꾸린 가운데 찬밥, 더운밥 가릴 겨를이 없었어요.”

서울 가락동 청과시장에서 일용직 가스 배달로 시작한 그의 사회생활은 해가 갈수록 고되기만 했다. 가스통을 배달하다 허리를 다쳤고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주유원으로 4년간 일했다. “오전 6시에 문을 열어서 밤 11시까지 일하고, 한 달에 두 번 쉬는 주유소 일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디에 가도 꼭 필요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아버지 말씀을 되새기며 열심히 일했어요.”

기회는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일하던 주유소가 부도나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했는데 우연히 조간신문에서 현대차 영업사원 모집 공고를 봤다. 영업사원이 되면 기름때 묻은 옷을 입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날아갈 것 같았어요. 마지막 직장이라는 각오를 새겼죠.”

‘임전무퇴’ 각오가 성공 비결

임 부장은 영업맨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차별성’과 ‘세심함’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업사원은 성공해서 이름을 알리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이 아니라 이름을 알려서 성공을 거두는 ‘양명입신(揚名立身)’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차별화 전략으로 이름을 알려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소비자와 빨리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그는 현대차에 입사하자마자 모든 양복 등판에 ‘현대자동차 임희성’이라는 자수를 새겼다. “한 벌에만 새기면 창피해서 안 입을 것 같았습니다. 임전무퇴의 각오로 이름을 알리자는 생각에 1t 차량을 사서 야간에 불이 들어오도록 한 탑차 광고를 하기도 했어요. 플래카드 광고도 많이 했지요. 공주 곳곳에 ‘현대자동차 임희성’이라고 적힌 50개 정도의 플래카드를 몇 년간 걸었습니다. 마케팅 비용만 한 해에 1500만원은 썼습니다. 영업을 처음 시작한 2001년에는 주변에서 ‘또라이’라고 말했어요. 2년 전부터 나비넥타이를 매는 이유도 차별화 전략이에요.”

겉모습만 신경 쓴 것은 아니다. 임 부장은 “영업사원의 입은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판매를 위한 발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벽이면 아내와 함께 전단을 돌렸다. 주말도 없었다. 요즘도 한 달에 4~5번은 영업 리듬을 잃지 않으려고 전단을 돌린다고 한다. “현장에서 멀어지면 감을 잃습니다.”

그는 남들보다 한두 시간 먼저 출근하는 것은 기본이고, 근무시간이 끝나 뒤에도 택시회사를 찾아다니며 영업했다. ‘발로 뛰지 않으면 결과가 없다’는 그의 소신은 적중했고 입소문을 타고 고객이 늘기 시작했다.

입사 첫해 차 40여대를 판 그는 이듬해 80여대, 3년차에는 100대 넘게 팔았다. 농촌이라는 지역 특성상 1t 트럭과 그랜저 이하 중·소형차에 집중한 영업전략이 빛을 발했다. “제네시스 같은 고급차는 지금도 한 해에 10여대 팔 뿐입니다. 1t 트럭을 매해 150대나 팔고 있어서 판매왕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장보다 유명한 영업사원

임 부장은 늘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있다. 손에는 휴대폰 두 대를 들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전화를 받고자 이어폰을 끼고, 통화 중에도 다른 통화를 이어가기 위해 두 대의 휴대폰을 쓰고 있다는 설명이다. “영업맨에게 전화는 생명줄이에요. 전화를 못 받으면 고객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저는 목욕할 때도 휴대폰을 가져가고, 머리맡에 전화기를 두고 잠듭니다. 365일 24시간 영업대기 상태지요.”

기자와 한 시간 남짓 대화하는 중에도 임 부장의 전화기는 20번 넘게 울려댔다. 그는 하루에 150통 가까운 전화통화를 한다. ‘공주시장보다 유명한 영업직원’으로 불리는 그의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는 5000여개에 달한다. “제 휴대폰 중 하나는 번호가 017로 시작하는 피처폰이고요, 다른 하나는 8000으로 끝나는 스마트폰입니다. 017 휴대폰은 바꿀 수가 없죠. 이 번호만 아는 고객이 상당하니까요. 아직도 하루 20통 정도가 017 번호로 걸려옵니다. 8000은 제가 팔고 싶은 자동차 대수입니다. 15년간 4278대를 팔았으니 퇴직 전에는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임 부장은 올해 또 다른 도전에 나설 계획이다. “영업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며칠간 계약이 없거나 불친절한 고객을 만나면 좌절하기 일쑤죠. 15년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운동이나 봉사활동도 해보곤 했는데 일에서 쌓인 스트레스는 일로 풀어야 한다는 결론을 냈어요. 젊은 영업사원들과 함께 대리점을 차리는 새로운 도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영업사원의 세계
직영은 기본급·대리점은 성과급 높아…연봉 천차만별


영업은 고된 일이다. 제품과 서비스를 팔아야 하기 때문에 소비자 눈치를 많이 봐야 한다. 판매량에 따라 수입이 결정돼 스트레스도 엄청나다. 그래도 자동차 판매는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제품 가격이 최소 1000만원을 넘다 보니 영업사원에게 돌아오는 성과급이 많아서다.

전국 자동차 영업사원은 약 3만명이다. 현대자동차가 약 1만1000명, 기아자동차가 8000명 정도다. 영업사원은 본사 직영점 직원과 대리점 직원으로 나뉜다. 현대차는 직영점 직원이 6000여명, 대리점 직원이 5000명 수준이다.

자동차 영업사원의 급여는 기본급에 성과급을 더해 정해진다. 대리점 직원은 기본급 비중이 낮고 성과급 비중이 높다. 수입자동차 판매 딜러는 기본급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영점 직원의 급여체계는 반대다. 기본급 비중이 높고 성과급 비중이 낮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직영점 영업사원은 기본급 비중이 9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딜러의 연봉은 직영점 직원이냐, 대리점 직원이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현대차는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이 회사 직영점 직원의 평균 연봉은 8000만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전체 직원의 평균 연봉 9700만원에 못 미친다. 현대차 직영점 직원의 기본급은 평균 7000만원 안팎이다. 차량 한 대의 판매 인센티브가 20만~30만원 수준이고 지난해 1인당 평균 60대 정도를 판매해 성과급이 1200만~1800만원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판매 실적에 따라 억대 연봉자도 상당하다고 현대차 관계자는 설명했다.

대리점 직원의 연봉은 천차만별이다. 차량 판매 성과급이 100만~120만원에 이르고 판매 실적이 제각각이어서다.

공주=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