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금폭탄’ 맞은 유모씨의 항변

[Law&Biz] 세금폭탄 맞은 '사돈의 정'
“언니, 여윳돈 좀 있어? 시아버지 사업하는데 돈이 급하게 필요한데 당장 빌릴 데가 없네. 이자는 두둑히 쳐주신대.”

시집 간 동생에게서 처음 ‘돈 꿔달라’는 전화가 온 건 2000년이다. 벌써 15년도 더 된 일이다. 동생의 시아버지 그러니까 나와는 사돈지간인 사장어른은 당시 부동산 개발사업을 크게 벌이고 있었다. 사업을 하다보면 급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나는 당시 모아 놓은 돈이 꽤 됐다. 마침 지인에게 빌려준 돈도 돌려받은 터였다. “얼마면 되겠니.” 사돈댁에 돈을 빌려줬다. 2004년까지 수차례 빌려준 돈을 셈해보니 2억원쯤 됐다. 동생은 큰언니와 엄마에게도 돈을 빌려갔다. 우리 셋이 사돈댁에 빌려준 돈은 모두 4억5000만원이었다.

지난해 8월 날벼락이 떨어졌다. “여보, 증여세를 내라는데 이게 무슨 일이에요?” 세무당국에서 증여세 4800만원을 내라는 고지서를 보내왔다. 증여받은 게 없는데 무슨 증여세일까.

듣자하니 큰언니에겐 2000여만원, 엄마에겐 1800여만원의 ‘세금폭탄’이 떨어졌다고 했다. 국세청에 확인해봤다. “장모씨에게서 2010년 계좌로 2억원을 입금 받으셨죠. 그걸 현금증여로 보고 증여세를 부과한 것입니다.” 내가 사돈에게 빌려준 돈을 돌려받은 것뿐인데 증여세를 물라니 억울했다. 지난해 말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했으나 기각됐다. 마지막 수단으로 행정소송을 내기로 했다. 법원에 사돈과 작성한 차용증, 채무상환사실 확인서 등을 제출하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 국세청 조사관 이야기

일부러 세금을 내지 않는 체납자들의 숨겨 놓은 재산을 찾는 게 내 일이다. 나는 세금을 체납한 장모씨를 조사 중이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나는 장씨가 2010년 인천의 한 토지와 건물을 7억7000여만원에 팔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계좌를 추적해봤다. 그랬더니 6억여원이 열흘 사이에 여섯 명의 계좌로 흘러들어갔다. 재산을 은닉하기 위한 조치가 틀림없었다.

장씨와 어떤 관계인지 확인해봤다. 3명은 유모씨 등 사돈지간이었고, 한 명은 장씨의 아내, 나머지 한 명은 딸이었다. 나는 유씨 등에게 장씨로부터 돈을 받게 된 경위에 대해 소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유씨 등은 아무런 금융자료를 내지 못했다. “빌려준 돈을 받았을 뿐”이란 대답만 돌아왔다. 적지 않은 돈을 빌려주면서 증거자료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심스러웠다. 또 돈을 빌려줬으면 매월 이자를 받는 게 일반적인데 몇 년이 지난 뒤에야 한번에 돈을 돌려받았다는 사실도 믿기 어려웠다. 유씨 등이 장씨의 재산을 은닉하기 위해 채무상환으로 가장해 돈을 받아뒀다고 보고 유씨 등 3명에게 증여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법원의 판단은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김경란)는 유모씨 등 3명이 세무당국을 상대로 낸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지난달 26일 “이 사건 쟁점 금원은 원고들(유씨 등)에게 증여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은 계좌에 입금된 돈이 장씨에게 사업자금을 빌려준 것을 상환받은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 증거로 제시한 ‘차용증’에는 차입금의 변제기, 이자율, 이자지급일자 등에 대한 아무런 기재가 없고 인장도 막도장이 날인돼 있을 뿐이어서 그대로 믿기 힘들다”며 “원고들이 주장하는 금원이 장씨에게 전달됐음을 인정할 만한 아무런 금융자료가 없다”고 판단했다.

한편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납세자 명의로 돈이 입금된 경우 증여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이뤄졌다는 입증 책임은 납세자에게 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