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기업가 정신 회복을 한국의 위기 극복 대안으로 꼽았다. 그는 “월급을 많이 받는 직장을 얻는 것보다 월급을 주는 기업가가 되는 게 더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항=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기업가 정신 회복을 한국의 위기 극복 대안으로 꼽았다. 그는 “월급을 많이 받는 직장을 얻는 것보다 월급을 주는 기업가가 되는 게 더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항=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김도연 포스텍 총장(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최근 위기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건 “한국이 변곡점에 놓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선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래야 성장 정체에 빠진 우리 사회가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 분야 역시 위기라고 진단했다. 기초과학 분야를 거론할 때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엔 저변이 취약하다”고 했고 공과대학을 얘기할 때는 “기업가 정신이 약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계 돌파의 해법으로 교육개혁을 제시했다. 교육개혁을 통해 창의성, 도전정신을 되살려야 난관을 뚫고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총장은 “요즘 공대에 들어온 학생들도 꿈이 노벨상이라고 하는데 공대는 노벨상 받는 곳이 아니고 돈을 버는 곳”이라며 “월급을 많이 받는 직장에 들어가는 것보다 월급을 주는 기업가가 되는 게 더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개혁에 앞서 사회 전반의 신뢰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실수하지 않는 경쟁에 불과한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1점 차이는 쉽게 인정하면서도 전문가인 입학사정관의 평가는 불신하는 게 우리 사회의 문제”라며 “주관적 평가를 받아들이는 신뢰 기반을 구축해야 국가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대론 대한민국 미래없다] 김도연 총장 "공대생 롤모델은 기업가…월급 주는 사람으로 키워야"
▷조선, 화학 등 주력 산업의 실적이 악화하면서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전망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떤 변곡점에 달한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과거와 다르게 접근하지 않으면 탈출구를 찾는 게 쉽지 않습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큰 반면 구동력이 약한 것도 문제입니다. 총론에는 동의하면서 아무도 자신은 손해보지 않으려 하니 갈등만 커지고 있습니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입니까.

“교육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발전 전략은 선진국을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벗어나 앞서 나가려면 창의성이 필요한데 그런 교육을 못 하고 있습니다. 교육을 바꾸려면 기성세대의 가치관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일류 대학을 나와야 행복하다는 것은 부모들의 미신(迷信)일 뿐입니다. 왜곡된 대입 제도도 기성세대의 집착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자식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행복해진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창의성, 도전정신 교육도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교육개혁을 위해 수능시험 폐지, 본고사 부활 등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한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이 입학사정관제 방식으로 과학고 학생을 뽑을 때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내신에서 10등 하던 학생은 붙고 5등 하던 학생이 떨어지자 부모가 총장실까지 찾아와 협박을 했다고 합니다. ‘실수하지 않는 경쟁’으로 전락한 수능시험 성적 1점 차이는 받아들이면서 입학사정관의 평가는 수용하지 않는 게 우리 사회의 신뢰 수준입니다. 자칫 대입 제도를 급격하게 바꾸면 갈등만 커지지 않을까요.”

▷사회 각 부문에서 리더의 역할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대학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신뢰가 부족해 나타난 폐해 가운데 하나가 단임(短任)입니다. 기업과 대학 모두 리더들이 먼 미래를 내다보고 일할 수 없는 여건입니다. 사람들은 리더십이 문제라고 하는데 리더십이 발휘되려면 리더를 따르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미국에는 총장 임기가 따로 없는 곳이 많습니다. 리더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 만큼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 도쿄대도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해 총장 임기를 6년으로 늘렸습니다.”

▷올해는 이웃나라인 일본, 중국이 노벨상 수상자를 연이어 배출하면서 한국 과학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이 연구개발(R&D)에 제대로 투자하기 시작한 것은 짧게 보면 10년, 길어야 20년에 불과합니다. 기초과학 저변이 약한데 어떤 특출난 사람이 나와 노벨상을 받으면 도리어 현실을 호도하는 등 착시효과가 생깁니다. 과학을 경제발전의 도구로 생각하는 시각도 고쳐야 합니다. 국내에서는 흔히 과학기술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과학과 기술은 엄연히 다른 영역입니다. 기초과학은 언제 돈이 될지 알 수 없는 분야입니다. 노벨상은 죽어라 하고 열심히 해서 받는 상이 아니라 즐겁게 일해야 받을 수 있는 상입니다. 2차대전이 한창일 때 오키나와 등지의 태평양 전선에서 80일 동안 1만2000여명의 미군이 전사했습니다. 국가적인 슬픔이었는데 이를 한번에 해결한 게 기초과학(핵폭탄)입니다. 미국, 일본에서 기초과학을 꾸준히 성원하는 것은 역사를 통해 중요성을 체득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연구비를 줄 때 논문 중심으로 평가하다 보니 유행을 좇는 단기 연구만 늘어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객관성을 중시하다 함정에 빠져버린 사례입니다. 보통 연구과제를 평가할 때 가장 높은 점수와 낮은 점수를 빼고 평균을 냅니다. 하지만 양 극단의 점수를 준 사람들이 더 정확하게 분석할 때가 많습니다. 이들이 토론을 벌여 결론을 내는 게 보다 옳은 방법일 겁니다. 서울대 교수 시절 국내 최초로 미국 공군으로부터 10만달러의 연구비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공군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연구였는데도 당시 평가자는 주관적으로 판단해 연구비를 줬습니다. 한국에서 이런 결정을 했다면 바로 특혜 논란이 불거질 겁니다. 주관적 평가를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과학 분야도 선진화될 수 있습니다.”

▷공대 교수들마저 논문 쓰는 데 집착해 산업 현장과 멀어지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공대에서 기업가 정신 교육이 많이 약해지며 생긴 현상이라고 봅니다. 노벨상 받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공대생도 많아졌습니다. 학생들에게 롤모델을 정확히 보여줘야 이를 바꿀 수 있습니다. 포스텍의 롤모델은 노벨상이 아니라 기업가입니다. 어디 가서 봉급 많이 받고 사는 것보다 월급 주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소중한 가치라는 것, 즉 기업가 정신을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학생들의 창업 도전을 늘리는 창조경제 정책의 실효성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졸업 후 취업, 진학만 생각하던 학생들이 창업도 대안으로 고려하기 시작한 게 창조경제 정책의 성과입니다. 나이 들어 실패하면 비참해지는데 젊었을 때 이것저것 경험해보는 것은 긍정적 변화입니다. 포스텍 학생들은 주로 기숙사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선후배 관계가 돈독합니다. 최근에는 동문 창업자가 협의체(Association of POSTECH Grown Companies)를 구성해 후배들의 멘토 역할까지 맡고 있습니다. 창업 초기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어 학생들의 반응도 좋습니다. 작년에만 7개 벤처가 창업했습니다.”

▷사회 전반의 신뢰를 높이는 게 결코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최근 만난 독일 드레스덴 공대 총장은 지난 50년 동안 한국이 이룬 경제와 과학기술 발전을 아주 높게 평가했습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성과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과 신뢰 부족의 문제는 압축 성장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200~300년을 거쳐 선진국에 들어간 나라와 비교할 때 혼란이 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생각을 확산시켜 신뢰를 키워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그동안 엄청난 기적을 이뤘는데 또 다른 일은 왜 못해내겠느냐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대론 대한민국 미래없다] 김도연 총장 "공대생 롤모델은 기업가…월급 주는 사람으로 키워야"
■ 김도연 총장은

교수·총장·장관…연구 넘어 행정가 활약

연구현장에서 최고 연구자로, 정부·대학에서는 행정가로 활약한 과학계 원로다. 서울대 교수 시절 무기재료공학 분야에서 200여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초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2007년)과 초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2011년) 등을 지냈고 울산대 총장, 공학한림원 회장을 역임했다. 지난달부터는 포스텍 수장을 맡고 있다. 아랫사람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등 포용력을 갖춘 게 요직을 두루 거친 배경으로 꼽힌다. 평소에는 차분한 성격이지만 필요할 땐 소신을 굽히지 않는 스타일이다. 2012년에는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확정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해 약 3000억원의 예산을 늘리는 등 뚝심을 보이기도 했다.
정부 출연연구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주요 기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합을 추진하기도 했다.

△1952년 부산 출생 △경기고, 서울대 재료공학과 졸업 △프랑스 블레즈파스칼대 재료공학 박사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 △서울대 공과대학장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울산대 총장 △공학한림원 회장 △국가과학기술위원장 △포스텍 총장(현재)

김태훈 IT과학부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