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손주 보고싶은데…" 부모 이혼·사별 뒤 조부모 면접권 허용 논란
A씨는 5년 전 남편 B씨와 사별했다. 교통사고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A씨는 시댁과 연락을 끊어버렸다. 남편도 없는데 시부모를 찾아뵐 이유가 없었다. 시부모들은 섭섭하다고 했다. 그들에게 자식이라곤 B씨 하나였기 때문이다. 며느리 A씨는 시부모와 손주들의 만남도 막았다. B씨의 부모는 궁여지책으로 손주들의 초등학교에 찾아가 몰래 얼굴을 보곤 했다. 이를 알게 된 A씨는 시댁 몰래 이사를 가버렸다. B씨의 부모는 손주가 눈에 밟혀 우울증까지 걸렸다. 그들은 “우리가 죽으면 재산은 모두 손주들에게 상속될 텐데, 내 핏줄이 어디서 어떻게 자라는지 소식도 알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C씨와 D씨는 3년 전 이혼했다. 아내 C씨에겐 정신질환이 있었다. 부부가 이혼하기 전 아이는 아픈 엄마를 대신한 외할머니 손에서 컸다. C씨의 정신질환은 점점 심해졌다. C씨와 D씨는 이혼했고, 양육권은 남편에게 넘어갔다. C씨는 병원에 장기간 입원하게 됐고, 자녀와의 만남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C씨의 부모는 딸을 대신해 전 사위에게 면접교섭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C씨의 부모는 아픈 딸을 대신해 사위에게 양육비를 보내주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내는 돈이 손녀의 양육을 위해 쓰이는지, 아이가 잘 성장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조부모에게 면접교섭권을 허용해야 한다는 법조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면접교섭이란 자녀를 양육하지 않는 한쪽 부모가 자녀와 서로 만나거나 편지, 전화 등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민법 837조의 2는 “자(子)를 직접 양육하지 아니하는 부모의 일방과 자(子)는 상호 면접교섭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정해놓고 있다. 조부모를 비롯한 제3자는 면접교섭권을 행사할 수 없다.

하지만 현행 민법이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조부모가 양육하는 자녀가 늘고 있는 시대 흐름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박현화 법무법인 나우리 변호사는 “조부모가 부모를 대신해 자녀를 양육하는 가정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부모의 갑작스러운 이혼이나 사별, 장기간 입원, 해외생활, 수감 등으로 부모 중 한 명이 자녀와 관계가 끊기면 그 조부모와의 관계마저 차단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경우 친족과 자녀 사이의 갑작스러운 관계 단절로 인해 아이들이 정신적 충격을 당하게 되는데, 이를 막기 위해선 조부모 등 친족의 자녀에 대한 면접교섭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선 차이는 있지만 자녀 복리를 위한 조부모와 형제자매 등 친족의 면접교섭권을 허용하고 있다. 윤강모 여성가족부 양육비이행관리원 설립 태스크포스 팀장은 “양육비 채무자의 범위 확대와 마찬가지로 면접교섭권 역시 부모만의 권리로 볼 수는 없다”며 “비(非)양육 조부모가 비양육 부모 이상으로 손자녀의 부양책임을 다하고 있다면 손자녀와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도록 면접교섭권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조부모의 면접교섭 확대가 가족 간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최근 들어 성인이 된 뒤에도 부모에게 의존하는 ‘캥거루족’이 늘고 있는데 이런 세태가 이혼 부부의 갈등 원인이 되기도 한다”며 “조부모에 대한 면접교섭을 허용할 경우 1차적 양육자인 부모의 권리가 침해돼 또 다른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한국여성변호사회와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연다.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과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여야 여성의원 6명은 관련 민법을 개정하기 위해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