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훈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 당선자(가운데)가 지난 9일 당선 직후 현대차 울산공장 노조 사무실 앞에서 만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경훈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 당선자(가운데)가 지난 9일 당선 직후 현대차 울산공장 노조 사무실 앞에서 만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자동차 노조원들이 장기 파업을 일삼은 강성 노조를 외면하고 무파업을 이끈 중도실리 노선의 이경훈 전 노조위원장(53)을 다시 선택했다. 현대차 조합원들은 이 후보 당선에 대해 “현대차 노조의 23년 강성 파업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역사적인 날”이라고 평가했다. 이 후보 지지자들은 “중도 실리를 어용으로 매도하는 강경파의 선거 구도는 더 이상 먹혀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년 만에 중도실리로 회귀

지난 8일 열린 현대차 노조위원장 결선 투표에서 이 후보는 투표자 4만2493명(전체 조합원 4만7246명·투표율 89.94%) 가운데 2만2135명(52.09%)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다. 이 당선자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현대차의 무파업 임단협 교섭을 성사시킨 실리주의 성향으로 2년 만에 다시 현대차 집행부를 이끌게 됐다. 이 당선자와 붙은 하부영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은 1만9906표(46.85%)를 얻는 데 그쳤다.

이번 선거에서 강성 후보들은 1차 선거에서 모두 탈락했다. 결선에서 실리와 합리를 추구하는 2명의 후보가 맞붙었다. 현대차 노조 역사상 매우 이례적이다. 이에 대해 현대차 안팎에서는 “지난 2년간 강성 노조 집행부가 주도한 파업 등 투쟁지향적 노동운동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만과 반감이 표출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 당선자가 위원장이던 2009년부터 3년간 현대차는 파업 없이 보냈으나 2011년 말 강성 노조 집행부가 등장하면서 임단협은 모두 파업으로 이어졌다. 이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 “그 어떤 투쟁과 명분도 조합원의 생존과 권익보다 우선할 수 없다”며 ‘고용 안정과 조합원 권익 향상’을 강조해 조합원 지지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노 갈등이 변수

이 후보가 당선되면서 현대차 노조 내 강성 현장조직 계파들은 합종연횡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어 향후 노사관계에 노노 갈등이 중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1차 투표에서 19.25%를 얻은 하 후보가 결선투표에서 46.85%를 기록한 것도 1차 선거에서 패한 강성 조직들이 연대를 통해 하 후보를 지지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결선 투표에서 이 당선자는 남양 연구소(70.26%), 정비(66.6%), 판매(57.76%) 등 간접 생산부서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했지만 하 후보는 울산공장 등 강성조직이 많은 생산부서에서 득표율이 높았다.

생산부서의 이 같은 움직임은 이 당선자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울산공장 1, 2, 3공장의 조합원은 1만6959명으로 전체 조합원의 36%를 차지한다.

노조 관계자는 “노조 현장조직들은 선거 때마다 합종연횡을 통해 집행부 선점을 노리고 있다”며 “중도 실리노선의 재집권으로 강성조직의 연대가 어느때보다 강해질 것으로 보여 이 당선자가 어떻게 노노 갈등을 치유할지가 최대 관심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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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에 변화 오나

이번 선거 결과로 현대차 노조를 최대 투쟁동력으로 삼아온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노동운동 방식에 적잖은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당선자는 이전 위원장 시절에도 ‘투쟁지향적 금속노조를 바꾸지 못하면 현대차 노조도 무너진다’며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정치투쟁에 참여를 거부했다. 취임 초기에는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에 한 달치 조합비 8억원을 내지 않고 보류시켜 금속노조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 관계자는 “이 전 위원장의 당선은 울산이 노사 상생의 도시로 탈바꿈하는 데 큰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당선자가 현대차 3년 연속 무분규를 이끈 2011년 울산은 고용부 집계 사상 30년 만에 ‘노사분규 0건’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